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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르릉, 따르르릉....... 뚝!”

시계소리와 시작된 아침. 고타로우는 기지개를 켜며 아직 잠에 미련이 남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집안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걸로 봐서 아빠는 일찍 나간 모양이었다. 시노는 보육원에서 여행을 가서 모레 뒤에야 돌아온다. 시아와 미샤가 차례로 고타로우의 곁을 떠나면서 시노를 데리고 집에서 같이 사는일이 큰 과제였지만, 다행이 시노가 다니는 보육원의 인원이 많아지면서 매달 내는 돈이 좀 늘어난 대신에 밤까지 시노를 돌보아 주었다. 보육원에는 고타로우 집같이 밤까지 집에 아무도 없는 가정의 아이들이 많은 덕분에 시노도 외로워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차가운 물로 세면을 하고 식탁에 앉았다. 식탁 위에는 오늘부터 일주일간 출장가서 미안하다는 내용의 편지와 아침밥, 그리고 아빠가 나가기 전에 보았을 신문이 놓여 있었다. 평소와 같은 아침이었다. 주위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고요했다. 가끔씩 창문 밖에서 추위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다른 곳으로 이동중인 철새들이 간간히 울고 있을 뿐이었다. 고타로우는 천천히 아침밥을 먹고 나서 TV를 보면서 좀 쉬면서 등교할 준비를 했다. 그때, 누군가 밖에서 벨을 눌렀다. 고타로우는 가방을 가지고 문을 열었다.

“고타로우, 같이 가자.”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두 사람은 고보시와 다카시였다. 중학교는 갈라졌지만, 서로 갈림길까지는 방향이 같은 데다가 중간에 고타로우의 집이 있어서 등교할 때마다 예전처럼 이렇게 모여서 등교하게 되었다.
다카시는 중학교로 가서 별로 변한게 없었다. 공부도 운동도 모두 만능이었다. 다만 이제 중학생이어서인지 목소리가 약간 굵어졌고 몸매도 좀 어른스러워 졌다. 키는 이제 고타로우보다 눈에 띄게 훨씬 커졌다. 조그만 지방 잡지에 사진이 실린 뒤로 인기는 더 많아졌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너무 많이 찾아 와서 난처할 때도 있다고 말했었다. 부럽다고 해야 할지, 불쌍하다고 해야 할지....... 새로 생긴 팬들의 폭풍우가 한번 불고 나면 다카시는 어김없이 쓰러지곤 했다.
하지만 고보시는 그렇게 변한 점은 없었다. 성격도, 키는 그래도 조금 컸지만 여전히 작았다. 입시때 웨이브로 올렸던 머리는 이제 풀고 한가운데로 묶었다. 중학교로 가고 나서 어린아이 같은 외모 덕분에 남자니 여자니 구분없이 인기가 많았다. 요즘 들어서 요리 실력이 늘어나서 여러 가지 음식을 고타로우와 다카시, 히로시 오누이에게 맛보게 하곤 했다. 맛있는 음식이 대부분이었지만, 가끔씩 터지는 폭탄 때문에 화장실에서 꼼짝 않고 있어야 했던 끔찍한 일도 있었다.

“안녕, 잘 잤어?”

“당연한 걸 왜 물어? 하하....... 빨리 가자!”

다카시가 웃으면서 고타로우를 끌어 당겼다. 끌려 가면서, 고타로우는 옆집을 향해 속삭였다.

“다녀올게”

“응? 뭐라고?” 다카시가 물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고타로우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했다.

“그보다 다카시, 고백은 했어? 오늘 같이 온 거 보니까.......”

“잠깐, 고타로우. 그렇게 크게 말하면.......”

“어? 다카시, 좋아하는 여자애 생겼어?”

잠시 침묵. 순진한 표정으로 묻는 고보시를 보며 다카시는 얼굴이 빨개진 상태로 시선을 외면했고 고타로우는 손으로 입을 막고 숨죽여 웃었다.

“으~~~. 고타로우! 야! 어딜 도망가!”

“우왓! 미안, 하하하하.......”

“잠깐, 기다려! 누군데 그래~!”

고타로우가 뒤기 시작하자 모두 뒤따라 뛰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하루. 골목마을이라서 단풍이 든 나무는 고사하고 그냥 나무 한그루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다른 때와 달리 높게 보이는 하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가을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높은 하늘에는 아침에 소리로만 들었던 철새의 이동이 눈 앞에 펼쳐졌다.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서 날아가는 모습은 한마디로 정말 멋졌다.
아슬아슬하게 도망가던 고타로우는 결국 놀이터에서 붙잡혔다.

“잡았다! 너 이녀석!” 다카시는 고타로우를 꽉 붙잡고 잡아당겼다.

“윽, 이런....... 어? 잠깐, 고보시는?” 고타로우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아차, 걘 아직 꼬맹이라서.......”

“누,가, 꼬맹이라구.......”

갑자기 고보시가 뒤에서 나타나 말했다. 뒤를 돌아보고 고보시를 찾으려던 다카시와 고타로우는 깜짝 놀랐다. 고보시는 숨이 너무 차서 말하기도 힘들어 보였다.

“아, 미안. 너무 키가 작아서 못봤어.”

“너, 이.......” 다카시가 놀렸으나 고보시는 숨이 찬 데다가 특별히 놀릴 말을 찾
지 못해서 얼굴만 더 빨개졌다.

“반칙이야! 너무 빈틈이 없잖아!”

“그거야 뭐....... 당연하지!”

약이 올라 달려드는 고보시와 그것을 요리조리 잘 피하는 다카시를 보며, 고타로우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소리쳤다.

“이런, 너희는 아직까지도 초등학생의 티를 벗지 못하는 거냐! 한심하도다!”

“다키시 오라버니~! 보고 싶었어요.”

뒤에서 검은 빛으로 반짝이는 리무진을 타고 히로시와 카오루 오누이가 나타났다. 둘 다 차에서 내려 이쪽으로 다가왔다.
말은 그렇게 해도 히로시 역시 달라진 건 거의 없었다. 목소리, 외모, 성격 모두 변하지 않았다. 물론, 예전과 같이 다카시만 보면 경쟁심을 불태웠으나, 이기는 건 여전히 다카시였다. 좀 달라진 게 있다면, 요즘에는 다카시의 팬이 있는 곳에서는 달려들지 않았다. 아마 팬 수가 많아지니까 살기를 느꼈을 듯 했다.
하지만 카오루는 상당히 변했다. 성격은 변한 게 별로 없었지만 머리를 길게 길렀고, 키도 상당히 커져 고타로우 만하게 되었다. 남학생들 사이에서 인기지수가 높아진 건 물론이었지만 다카시와의 진전이 있을 리가 없었다. 가끔은 다카시의 마음을 모른 채로 달라붙는 카오루가 불쌍하기도 했지만, 사실을 알게됬을 때의 카오루의 행동이 무서워서 고타로우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누가 할 소린데! 그리고 그 촌스러운 안경 좀 이제 바꿔라, 응가. 안그래도 어벙한 얼굴이 더 어벙해 보인다.”

“맞아, 기왕이면 다카시처럼 렌즈를 끼지 그래?”

다카시가 맞받아 치자 고보시도 같이 놀렸다.

“시끄럽다! 누가 다카시 따위와 같이 렌즈를 낄 것 같으냐? 불쾌하다! 그리고 응가라고 부르지 말란 말이다!”

“오라버니! 다카시 오라버니를 나쁘게 말하는 것은 제가 용서치 않습니다!”

딱! 카오루가 항상 들고 다니던 무기로 히로시의 종아리를 때렸다.

“윽! 카오루....... 네가 어떻게.......”

쓰러진 히로시가 종아리를 잡고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말했다. 끝까지 말을 잇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너무 아파서인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시끄럽습니다! 아, 여러분. 가는 길까지 같이 타고 가시지 않겠습니까? 같이 가면 더 재미있을 텐데.......”

“아니, 요즘은 이렇게 다같이 모이는 시간도 많지 않은데 그냥 걸어갈래. 혹시 괜찮다면 같이 가지 않을래? 차로 가는 것보다 천천히 걸어가는게 더 많이 이야기 할 수 있을 거야.”

고타로우가 말했다. 장난치는 것도, 소리내어 웃는 것도, 그리고 같이 가자고 하는 것도 예전에 무뚝뚝한 고타로우에게는 기대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사실 가장 많이 변한 것은 고타로우일지도 모른다. 외모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성적 때문에 크게 짜증내지도 않았다. 물론 친구를 쉽게 사귀지 못하는 점은 변하지 못했지만 부정적으로 일을 생각하는 경우가 크게 줄었다.

“네, 그게 좋겠네요. 저도 다카시 오라버니와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니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가방 가지고 올게요.”

“난 같이 못 간다! 차타고 갈 거야!”

카오루가 가방을 가지러 가려고 하자 역시나 히로시가 소리쳤다.

“입다무십시요!” 따~~악! 아까보다 더 쌔게 머리를 한방 때린 카오루는 차로 가서 히로시의 가방도 꺼내 왔다.
모두 시내로 걸어나왔다. 골목과 달리 시내는 여러곳에 단풍나무가 심겨 있었다. 시내라서 항상 바쁘고 혼란스러웠지만 하나 둘 단풍이 들어가는 모습은 그런 정신없는 가운데서 자신의 빛을 잃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가을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아, 난 이제 그만 가 봐야겠다.”

“저도 이제 이쪽 길이에요. 다카시 오라버니, 그럼 안녕히....... ”

“하하....... 잘가, 나중에 만나.”

“안녕.”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덧 각자의 학교로 떨어져야 하는 골목에 도착했다. 모두 아쉬움을 달래며 서로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어디선가 흘러 나오는 가을의 향기가 그들의 아쉬움을 가만히 달래주고 있었다.

죠대부중. 히로시와 고타로우가 같이 다니는 사립 남중이다. 거기다가 둘은 같은 반으로 배정되었다. 질긴 인연이었다. 하지만, 친구 사귀는 데 많이 서투른 데다가 별로 눈에 띄지도 않는 고타로우가 몇몇 친구를 사귀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히로시 덕이었다. 그 이유는.......

“고타로우! 기다리던 체육시간이다! 오늘은 친히 이 몸께서 허약한 너와 축구 시합을 신청하겠다! 도망가지는 않겠지?”

‘또, 시작이냐’

입학하고 첫 체육시간, 같은 반 끼리 편을 갈라 농구를 했는데 고타로우가 있던 팀이 히로시가 있던 팀을 이겼었다. 그렇지 않아도 항상 가문자랑을 해서 튀는 히로시가 체육시간만 되면 고타로우에게 이런 식으로 승부니 도전이니 소리치니 고타로우가 눈에 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용히 지내고 싶다는 고타로우의 소박한 꿈은 그렇게 첫 체육시간만에 깨져버리고 말았다.

“고타로우!”

“이번에도 꼭 이겨버리자!”

첫 체육시간 당시, 고타로우와 같은 팀이었던 사쿠라자키 타츠키와 타쿠다. 일란성 쌍둥이 형제로 이 학교에 올 정도니 공부에서도 중상은 차지했지만 운동 신경도 뛰어났다. 하지만 씩씩하고 튼튼한 이미지하고는 관계가 멀어보였다. 얼굴은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듯 했고, 키도 좀 작은 편이기 때문이다. 집이 상당히 멀어서 다니기 힘들지만 그래도 버스까지 타면서 다니게 된 이유는 요즘 한창 뜨는 신인 가수 나카세 야마토가 이 죠대부중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둘 모두 야마토의 광팬이다. 가방, 필통 등등....... 야마토의 사진이 없는게 없을 정도였다. 집이 멀어 학교에서 외에는 만나기 어렵지만, 그래도 히로시 덕택에 사귄 친한 친구들이다. 조용히 지내지 못한 대신에 생긴 좋은 일이라고나 할까나.......

“시끄럽다! 이번에도 질 성 싶으냐?”

“맨날 말만 잘하더라. 이긴 적은 한번도 없으면서.” 타쿠가 놀렸다. 탈의실에서
체육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또 티격태격이다.
모두들, 이제 미샤와 시아가 없다는 사실에 많이 익숙해졌다. 가끔 편지라도 없냐고 친구들이 물어볼 때면 이상한 글씨로 편지를 써서 오지 못하는 거일지도 모른다고 얼버무렸다.
그렇게 시간이 갈수록, 미샤와 시아는 점점 다른 친구들에게 잊혀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고타로우는 쉽게 잊지 못했다. 중학생이 되어 더 힘들어진 공부를 하면서도, 어려운 시험을 치루면서도 잊는다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학교, 학원, 그리고 집에서 계속되는 복습. 사실 그 둘을 아직 잊지 않았기 때문에 고타로우는 더 힘들어진 나날 속에서도 성격이 많이 좋아진 것이었다. 둘이 언제나 함께 있어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매일이 앞으로 걸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행복해진 것 같다고는 생각하고 있어도 매일 학원 수업이 끝나고 어두운 골목을 혼자서 걸어 갈 때면 그 둘이 그리워지곤 했다. 깜깜한 밤하늘에 조그만 별이 하나씩 보일 때면 그리움은 곧 외로움으로 바뀌어갔다. 그럴 때면 고타로우는 ‘같이 있었으면 더 행복해졌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미샤와 시아는 너무 착해서 결국 또 다리에 힘을 잃고 기대어 어리광만 부리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더 불행해 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아자! 고~~~~ㄹ 인!

타쿠가 골을 넣자 타츠키가 달려왔다. 둘이 야마토의 춤을 따라 추며 골 세레머니를 했다.

“뭐냣! 겨우 한골가지고 그렇게 우쭐대지 마라! 반드시 역전시켜 주마!”

약이 오른 히로시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리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히로시가 약간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찌 보면 동정의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때,  고타로우의 눈에 갑자기 낯익은 사람이 학교 밖 담을 지나갔다. 너무 빨리 지나가서 자세히는 못 보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잠시동안, 고타로우는 그 사람이 지나간 곳을 보며 꼼짝 않고 있었다.

“히히! 어이, 고타로우! 우리 한골 더 넣자!”

고타로우는 고개를 흔들고 다시 축구를 했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공을 바쁘게 쫓아다니다가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은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체육시간이 끝나고, 결과는....... 당연히 고타로우팀의 압승이었다. 히로시를 빼고, 모두들 승패에 관계없이 즐거워 보였다.


학원도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언제나처럼 아무도 없는 깜깜한 골목길에서 하늘에 떠 있는 별들만이 고타로우를 비추어 주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마치 집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설마, 오늘은 집에 아무도 없을 텐데.......”

고타로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씁쓸한 표정은 금세 웃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집에 도착하고, 열쇠로 잠긴 문을 열면서까지 고타로우는 오늘 좀 이상한 자신에 대해서 한참동안 생각하고 있었다.

“다녀오셨어요?”

“응, 다녀왔어.”

낯익은 목소리가 옆집에서 인사했지만, 고타로우는 계속 생각하느라. 가방을 내려놓았을 때, 고타로우는 그때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고 나가 옆집을 보았다.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이제껏 소중히 간직했던 기억들이 뒤섞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나 둘, 그리웠던 사람의 웃는 표정, 고민하는 표정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문 앞에는, 시아와 젊었을 때의 모습을 한 증조할아버지 타로, 그리고 시아를 데리고 간 검은 옷을 입고 방울을 목에 맨 악마가 서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시아가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가슴이 더 뛰기 시작했다. 떨리는 손으로 시아의 어깨를 잡았다. 따뜻했다.

“시아....... 누나?”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도록 할까?”

방울을 목에 맨 악마가 들어올 것을 제안했다. 고타로우는 아직 갑작스런 일에 놀라 떨리는 것이 멈추지 않는 몸을 이끌고 들어갔다. 뒤따라 시아와 타로가 들어왔다.
시아가 차와 다과를 준비하고, 타로가 그것을 도와주는 동안, 고타로우는 둘을 가만히 지켜보는 이름 모르는 악마를 내내 경계했다. 악마는 고타로우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는 듯, 미동도 하지 않고 둘을 지켜볼 뿐이었다.
차와 다과가 준비되고, 모두 둘러 앉자 악마가 입을 열었다.

“그래, 묻고 싶은 것이 많은 모양인데.......”

“.......”

고타로우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악마는 잠시 지켜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전에 내 소개를 먼저 해야겠군. 초면은 아니지만....... 내 이름은 크라우스 로젠버그, 외국에서
온 악마다. 일본에 와서는 시로라고 불리고 있으니 그렇게 불러라.”

“.......”

여전히 고타로우는 입을 열지 않았다. 궁금한 건 많았다. 사실은 입을 열지 못하는 거였다. 아까부터 떨리는 몸이 진정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놀란 가슴은 진정되었다. 하지만 시로에 대한 두려움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 타로가 고타로우의 어깨를 잡았다.

“떨지 말고 진정해. 언제까지 떨고 있을 수는 없잖아.”

타로가 웃으면서 말했다. 고타로우는 어쩐지 몸이 떨리던 게 멈추는 것 같았다. 점점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제일 먼저 묻고 싶은 것은 어떻게 시아와 타로가 살아났는가였다. 하지만, 진정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어쩐지 그 방법은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건 시아와 타로가 다시 살아났다는 거였으니까....... 결국 고타로우는 그것은 물어보지 않도록 했다.

“여기에 온 목적은.......”

고타로우는 긴장해서 끝을 잘 맺지 못했다. 고타로우가 제일 경계하고 있는 건 시로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시로는 예전에 고타로우를 죽이려고 했던 자였다. 쉽게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짐작가지 못했지만 어쩐지 다른 목적이 있어서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목적은 없다. 아무래도 내가 다른 목적이 있어서 왔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내
가 여기에 있는 것에는 다른 뜻은 없다. 다만, 시아와 타로가 여기 오고 싶어했고, 둘을 보내려면 나도 여기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시아와 타로가 다시 살아난 방법과 관계가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라.”

말을 마치고 잠시 생각하는 듯 보이던 시로는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라면 다시 살아난 방법이 상당히 궁금할 텐데 일부러 묻지 않는 것 같군. 쓸데없는 참견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네가 묻는다고 해도 난 말해 줄 수 없다. 마계와 깊게 관련된 일을 인간에게 말하는 것은 엄격히 제한되어 있으니까. 그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 내가 명확히 말해줄 거라고 기대하지는 마라. 물론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 마계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다른 목적이 없다는 말에 고타로우는 상당히 안심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그 말은 적어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타로우가 궁금한 것은 끝이 아니었다.

“그럼, 이제 더 이상 여기 있어도 시아누나는 죽지 않는 건가요? 그리고 타로 형은 어떻게 되는 거죠?”

이번에는 좀 편안하게 물어 볼 수 있었다. 처음보다 상당히 안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떨리던 것도 멈추었다. 시로는 다시 차를 한모금 마시고 대답을 시작했다.

“너에게 존댓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군......(이 말을 하면서도 사로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했다). 그래, 이 곳에 너무 오래 머문다면 나도, 시아도, 타로도 살아 있을 수 없을 거다. 타로도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악마이니까.”

이 말을 듣는 순간, 고타로우는 움찔 했다. 그리고 시아와 타로를 보았다. 하지만 그둘의 표정은 매우 차분했다. 오히려 고타로우에게 걱정 말라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 하지만, 난 고위마족. 시아처럼 인간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인간의 않좋은 감정만 있다면 그리 마력이 약해지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다.”

악마란게 팍팍 드러나는 말이었지만 고타로우는 생각했다. 이제 ‘시아누나는 떠나지 않고 쭉 계속 있을 수 있는 걸까’ 라고. 하지만, 그것을 시아누나에게 물어보기 전에 고타로우는 졸음이 쏟아졌다. 고타로우는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다. 이런 졸음은 처음이라 상당히 두려웠다. 아직, 시로에 대한 경계가 모두 풀린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고타로우는 시로가 이상한 짓을 한 게 아닌가 라고 의심했다. 눈이 감기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시로를 쳐다 보았다.

“상당히 피곤한가 보군, 오늘은 그냥 여기서 자고 가라.” 시로가 말했다.

“괜찮아요. 마음 놓고 푹 쉬어요.”

“맞아. 저 바보가 나쁜 짓 하려고 하면 내가 두들겨 줄게.”

“이봐, 너.......”

“.............”

주위의 소리가 점점 알아듣기 힘들게 섞이기 시작했다. 집 안의 풍경도 점점 엉망으로 뒤섞이기 시작했다. 그 때, 한순간 시아와 엄마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고타로우는 마치 엄마에게 안긴 듯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천천히, 고타로우는 눈을 감았다.


“으앗, 고타로우! 그건 만지면 안돼!”

‘어? 여긴 어디지?’

흐릿하던 주위가 점점 선명해졌다. 어느 집의 방 안이었다. 전통 가옥같았다. 조그마한 장롱이 벽에 붙어 있었고, 그 옆에는 이불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군데군데 벽의 낡은 부분이 움푹 파여 가난해 보이는 집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풍요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집이었다.

“쨍그랑, 와장창~~!”

어디선가 그릇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기의 웃음소리. 고타로우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기의 웃음소리. 고타로우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 보았다. 무너진 그릇 더미 앞에 앉아서 즐거운 듯 그릇 하나를 집고 이리저리 흔드는 한 아기와 무릎을 꿇고 한숨을 내 쉬는 타로가 부엌인 듯한 곳에 있었다. 시아가 시노를 업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들어왔다.

‘전생의 모습인가. 왜.......’

“괜찮아요?”

“응, 괜찮아. 어휴....... 어떻게 어릴 적 내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을까. 한시라도 긴장을 풀지 못하게 만드네.”

시아가 묻자 타로가 웃으며 시아를 안심시켰다. 상당히 겁을 먹은 시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금새 울먹이기 시작했다.

“우. 죄송해요. 제가 조금만 더 주의를 했어도.......”

“괜찮다니까. 그리고 시마(시아가 기억상실로 하계(인간계)에 왔을 때 자신을 주워 준 쌀집 주인한테서 얻은 이름. 혹시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넌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잘못이라면 바로 옆에 있던 나나 저기 있는 고타로우한테 있지.”

“그래도.......”

“으~. 아니라니까. 제발 모든 책임을 자기에게 돌리려고 하지 마! 넌 정말 잘못한게 없다니까!”

타로가 일방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서로 책임을 자기에게 돌리려고 하는 두 사람을 고타로우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매우 좋아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고타로우는 눈 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아기인 고타로우를 보니, 고개가 숙여졌다 올라갔다 하면서 졸고 있었다.

“아아, 이제 고타로우 말썽 피울 거 다 피웠나 보다.”

“그렇네요.”

시아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전생의 고타로우를 안아 올렸다. 타로가 그 손을 잡아 주자, 고타로우는 자신이 그 아기인 것처럼 손이 따뜻해져 왔다. 부드러운 햇살이 고타로우의 손을 천천히 감싸주듯, 고타로우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때, 자신의 양 어깨를 누군가가 잡아 주었다. 놀라 뒤를 돌아보니, 날개 달린 천사가 고타로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했으나, 점점 흐려지더니 결국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눈을 떴다. 자신의 방이 아닌, 다른 방에 누워 있었다. 잠깐, 왜 자신이 여기에 있는지 알지 못하던 고타로우는 천천히 어제 있었던 일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평소 아침보다 유난히 햇살이 눈부셨다. 몸도 평소보다 훨씬 가뿐해 진 것 같았다.

‘아까 그건 꿈이었나?’ 고타로우는 창문 밖을 보며 잠시 어젯밤 꾼 꿈을 생각했다.

“아차, 학교!”

고타로우는 서둘러 방 밖으로 나갔다.

“괜찮아요,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시아가 웃으며 말했다. 고타로우는 안심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제야 고타로우는 어제 보이지 않았던 집안의 모습이 보였다. 장롱이 두개 놓여 있었고, 시계가 현관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장롱 옆에는 여러 가지 책이 꽃여 있는 책장이 있었다. 구석에는 예전 미샤가 사용했던 상자와 똑같이 생긴 ‘천계행’ 이라고 써 있는 상자가 놓여 있었다. 이 상자를 본 순간, 고타로우는 잠시 가슴이 쓰렸다. 졸업식 날, 아무것도 없는 텅빈 방이 생각나서였다.
거실 한 가운데에 식탁을 놓았고 그 위에 시아가 만들었을 아침밥이 놓여 있었다. 책을 보던 타로는 고타로우가 나오자 손을 흔들며 인사했고, 시로는 차를 마시며 신문(왜 악마가 신문을 보는지 궁금했지만 하여튼 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시아는 도시락을 싸고 있었다.

“뭐해? 가만히 있고. 빨랑 와서 밥 먹어야지~!”

고타로우가 가만히 서서 주위를 둘러보기만 하자 타로가 말했다.

“네, 그리고 시아누나, 우리 학교는 도시락이 아니고 급식인데.......”

“아, 그런가요?”

“이제 중학생이니까.”

고타로우는 식탁에 앉았다.

“그래도, 도시락 싸 주면 좋겠어. 시아누나 도시락은 맛있으니까.”

“그럼 그럼. 아, 그리고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르지 말고 타로 형이라고 불러. 죽기 전에는 비록 네 증조할아버지였지만 지금은 이런 모습인데 그렇게 부르는 건 어색하잖아?.”

“방정맞기는.......”

타로가 웃으면서 고타로우에게 말하자 시로가 화가 난 듯한 표정(원래 쌀쌀맞은 표정이었지만)으로 핀잔을 주었다. 잠시, 모두 아무 말 없었다. 타로의 얼굴이 점점 빨개졌다.

“너....... 인간의 감정을 모르면 가만히 있어! 이게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지도록 하는 방법이라고!”

“예전에 인간이든 뭐든 지금 넌 악마다. 그리고 네 앞에 고타로우보다 너는 수십 살 더 먹었을 텐데 하는 행동이 어째 고타로우보다 더 어린애 같군.”

“이 냉혈악마야! 꼭 그렇게 따져야 겠냐!”

사이가 별로 좋지는 않은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원수지간 같지는 않았다. 마치 다카시와 히로시 모습 같았다. 조금이지만, 어쩐지 시로가 전보다 더 편하게 느껴졌다.

“아, 싸우시면 안되요.”

시아가 도시락을 싸다가 그 둘을 말렸다. 금방 진정되었다. 그 모습을 보던 고타로우는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밥을 먹으려고 했을 때, 고타로우의 눈에 다시 ‘천계행’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동안 눈을 떼지 못하던 고타로우는 순간 어젯밤 꾸었던 꿈에 나타난 천사와 미샤가 동시에 생각났다. 닮았었다. 목이 메여왔다.

“사실.......”

고타로우가 숟가락을 놓으며 입을 열었다. 도시락을 싸던 시아도, 서로 다투던 타로와 사로도 잠시 멈추고 고타로우를 보았다.

“사실, 너무 그리웠어. 그리운 건 속일 수 없는 거야. 미샤누나도, 시아누나도 너무 그리웠어. 시험 공부를 하고 있으면, 미샤 누나가 창문 밖에서 공부를 방해하는 것 같았어. 창문을 열어 보면 아무도 없었지. 전에는 귀찮았지만, 정말 미샤누나가 창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매일 생각했었어. 그리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아침이 되어서 밖으로 나가면 달려들어서 안아주는 미샤누나와, 도시락을 챙겨 주면서 하루를 힘낼 수 있게 배웅해 주는 시아누나가 생각나서 많이 허전했어....... 어쩔 수 없나봐. 너무 약한 걸. 나 정말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이제까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는지도 몰라. 이제까지, 스스로 서 있지 못하고 계속 누군가에게 기대왔던 거일지도 몰라. 혼자서는 더 이상 행복해 질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정말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간단하게 무너지는 자신인데, 더 자랐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한심했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시아가 다가와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고타로우를 안아 주었다. 고타로우는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크게 자랐잖아요. 몸도 마음도 전보다 훌쩍 자랐으니까 아마 지금까지 많이 걸어왔을 거에요. 어쩔 수 없어요.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은 혼자서는 설 수 없으니까요. 저도 당신도 스스로 노력은 할 수 있지만, 스스로 행복해 지려고 노력할 수는 있지만, 결국 누군가와 함께 설 수 밖에 없는 존재에요. 그리고 함께 있어야 더 행복해 질 수 있는 존재죠. 너무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마세요. 함께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에게 기대게 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같이 있으면 일어서는데 의지가 될 수 있으니까요.”

고타로우는 눈이 흐려졌다. 볼을 따라 눈물이 약간 흘러내렸다. 마치, 지금껏 자신을 조여왔던 밧줄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아무리 행복해도, 소중한 사람이 같이 있어주는 것만큼 행복하지는 못하는 거였다. 하지만 고타로우는 혼자서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으로 잘못 이해해고, 자꾸만 그립고 외로워져서 그 동안 많이 불안했었다. 그 당연한 것을, 나약한 자신이기 때문에 생각나는 거라고 많이 괴로워했었다. 미샤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스스로 일어서서 행복해지려고 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미샤에게 기대고 싶어 했다. 성격도 좋아지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지만, 그런 자신을 볼 때마다 항상 화가 났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주위에 미샤와 시아가 더 이상 있지 않다고 생각할 때는 더 우울해졌다.
하지만, 지금 시아가 그 단단하게 묶여 있던 밧줄을 풀어 주었다. 억지로 부정해 왔던 것을 인정하게 해 주었다. 사실 인정하는 게 더 편안했는데. 부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는데.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 보다 더 행복할 수 있는 건 없었는데.......

‘그래, 오늘 아침 유난히 햇살이 눈부셨던 것도, 몸이 가뿐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는지도 몰라. 그리고 어제 졸음이 갑자기 쏟아진 것도. 이렇게, 엄마가 안아주는 것처럼 편안하고 포근한데.......’

고타로우는 안아준 시아의 손을 잡았다.

“고마워. 시아누나. 돌아와 줘서. 그리고 이제 떠나지 말아줘. 전에도 그랬듯이 앞으로 가족이 되어줘. 앞으로 계속.......”

“네, 제가 고타로우의 엄마가 되어 줄게요.”

고타로우가 부탁하자 시아가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다.

“그래, 그래. 그리고 내가 아빠가 되 줄게.”

“고타로우의 아버진 아직 안 죽었어. 그냥 가만히 입 다물고 나이 값 좀 해.”

타로가 고타로우에게 말하자 시로가 또 핀잔을 주었다.

“시끄럿! 이 고양아!”

“그건 또 어떻게 안 거야!”

“당연히 시아에게 들었지.”

또 다시 싸우기 시작하는 두 사람이었다. 그런 두 사람을, 고타로우와 시아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아, 이런. 지각하겠다. 이제 그만 가 봐야겠네. 고마워, 시아누나. 다녀오겠습니다.”

“아침밥은요? 아직 안드신 것 같은데.”

고타로우가 나갈 채비를 하자 시아가 걱정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괜찮아, 이 도시락이면 되.”

고타로우가 말했다.

“다녀오세요.”

“잘 갔다와.”

“응, 모두 다녀올게요.”

고타로우가 도시락과 가방을 들고 나가려고 하자 시아와 타로가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었다. 하지만 시로는 역시나 가만히 입 다문 채로 잠깐 쳐다보다 말 뿐이었다.

“이 녀석이나 저 녀석이나 똑같아! 악마로서 모두 실격이야!”

“신경 꺼, 냐옹아~~.”

“그렇게 부르지 맛!”

고타로우가 나가자 둘은 또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살짝 한숨을 쉰 시아는 책꽂이에서 ‘서로 사이가 좋아지도록 만들어 주는 방법 100가지’ 라는 책을 뽑아 읽기 시작했다.


“어라?”

학교. 왠지 모르게 매우 조용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고타로우는 교실에 다른 학생들이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 교실 창문 옆으로 커다란 학교 시계가 알려주는 시간은 시아네 시계보다 한시간은 더 빨랐다.

“큰일났다. 엄청 지각했다!”

놀란 고타로우는 학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탈의실에서 자신의 교복을 대충 꺼내 입고 교실로 달려갔다.

‘시아누나....... 그 시계.......’

생각해 보니 어쩐지 그날따라 고보시와 다카시가 찾아오지 않았었다. 집에 없으니 아마 먼저 출발했다고 생각하고 갔을 듯 했다.

“죄송합니다. 좀 늦었습니다.”

고타로우가 문을 열며 사과했다.

“좀이 아니야! 고타로우. 왜 늦었나? 평소의 자네답지 않게.”

수학 선생님이었다. 고타로우의 담임을 맏고 있는 선생님이다. 눈매가 날카롭지만 상당히 둥글둥글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평을 받는 선생님이다.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만, 교칙에 대해서는 상당히 엄격한 선생님이었다.

“알람시계 건전지를 갈아 끼우는 걸 잊어버려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음, 뭐 그런 실수는 한번 쯤 있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니까. 다음부터는 조심
하게나.”

선생님은 너그러이 웃으며 용서해 주었다. 고타로우가 감사하다고 인사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히로시가 일어났다.

“한심하구나! 고타로우. 늦었다는 이유가 고작 그거냐?”

“히로시! 한심하구나! 수업시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서서 떠들다니! 뒤에 나가 서 있어라!”

“엑!”

선생님이 히로시의 목소리를 따라하며 혼내자 교실은 금세 웃음바다가 되었
다. 그 때,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렸다. 웃음소리는 더 커졌다.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됬나? 히로시! 이번에는 운이 좋은 줄 알아! 그리고 고타로우, 앞으로 조심하도록 하게.”

“네.”

선생님이 나가자 타츠키와 타쿠가 고타로우에게 다가왔다.

“고타로우! 있잖아, 진짜 늦잠자서 지각한 거야?”

“몸 괜찮은 거야? 진짜 평소의 고타로우같지 않아.”

타츠키가 묻자, 타쿠가 걱정되는 듯이 뒤따라 물었다.

“괜찮아, 아픈 건 아니야. 그리고 늦잠 잔 것은 맞지만 건전지 때문은 아니야. 어제 아는 사람들이 옆집으로 이사왔는데, 거기서 자다 보니까 늦은 거야.”

“무지 보고 싶었던 사람이야?” 

 “응.” 

 “어떤 사람인데?”

고타로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비밀이라는 표시를 했다.

“나에게는 가족 같은 사람들이지만, 히로시가 알면 큰일날 거야.”

“아. 그런거야?”

고타로우가 대답하자 둘 다 알아듣는 듯 했다. 그리고, 히로시를 쳐다보았다. 히로시와 눈이 마주치자, 히로시도 셋이 같이 이야기하는 곳으로 왔다.

“뭐냐? 무슨 얘기를 하길래 남을 그렇게 쳐다보는 거냐?”

“히로시는 알면 안 되는 거야.”

“맞아, 히로시는 너무 난폭해, 아마 알면 찾아가서 엉망으로 만들걸?”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런 뜻이 아니야.’

타츠키와 타쿠가 말하자 고보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생각했다.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히로시까지 알게 될까봐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히로시가 알게 되면 타츠키의 말처럼 악령퇴치라고 달려들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

“말 그대로다. 메롱.”

"뭐얏!"

결국 또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왜 내 주위에는 이렇게 서로 싸우기를 좋아할까.’

잠시 생각하던 고타로우는 오늘 아침 시아가 싸 준 도시락이 생각났다.

“잠깐만, 이 도시락 같이 먹을래?”

고타로우가 도시락을 꺼내며 물었다.

“어? 고타로우 무슨 도시락이야?”

“이사 온 사람이 싸 준 도시락이야. 아마 맛있을 거야. 아침밥을 못 먹어서 여기서 먹으려고 가지고 왔어.”

“응, 먹어볼래.”

타츠키와 타쿠가 왔다. 그리고 달걀말이를 한개씩 먹어 보았다.

“우와! 맛있어!”

“혹시 그 사람 요리사야?”

둘다 맛있다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히로시가 또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비꼬기 시작했다.

“흥. 맛있어 봤자 결국은 서민 음식일 뿐이다. 우리 미라타이 가문의 엄선된 요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겠지.”

그 말을 듣자 고타로우는 화가 났다. 그리고 새우튀김을 하나 집어서 히로시의 입에 갖다 댔다.

“윽, 뭐냐?”

“먹어보고 말해봐!”

히로시가 묻자 고타로우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찔끔하던 히로시는
잠깐 망설이더니 고타로우의 눈을 보고 결국 입에 넣었다.  그리고 나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금방 표정을 바로잡았다.

“뭐, 그럭저럭 먹을 만 하구나.”

“항상 얄밉게 말한다니까. 패배를 인정 하시라, 히로시군.”

삼키고 나서 히로시가 말하자 타쿠가 비꼬듯 말했다. 또 서로 다툴려고 할 때 주위에서 갑자기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도 한입 먹어볼래.”

“나도, 히로시가 맛있다고 하는 걸 보니까 정말 맛있을 거 같아.”

너도 나도 반찬을 한개씩 먹어보기 시작했다. 수업을 하러 들어오신 선생님도 중간에 들어오시더니 한개 드셔 보시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비록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고타로우는 굉장히 기뻤다.


“♪지금은 한그루 작은 나무일 뿐이지만♬”

“♫언젠가 반드시 너를 향해 내리는 비를 막을 수 있는 커다란 나무로 자랄께.♬”

“♬그때까지만....... 기다려줘.......사~랑해♪”

갑자기 아닌 밤중에 홍두깨마냥 튀어나오는 노래. 마지막 귀가 종이다. 다른 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죠대부중만의 특별한 모습이다. 마지막 종은 얼마 전부터 이렇게 나카세 야마토의 노래를 틀어 주었다. 열성 팬인 타츠키와 타쿠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끝나기 전에는 초까지 정확하게 다져서 따라 불렀다.

“자,자. 거기 둘. 그만 조용히 하고 앉아. 종례하도록 하자.”

“차렷, 경례!”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자마자 고타로우는 가방을 들고 급하게 뛰어 나갔다. 오늘은 특별히 학원 수업도 없었다.

“굉장히 보고 싶은가 봐. 저렇게 허둥지둥 나가는 고타로우는 처음봐.”

“요리도 잘하시고....... 어떤 분이실까? 한번 만나고 싶은데.......”

너무 급해서 잘 가라는 인사도 하지 않고 나가버리는 고타로우를 보며 서운해
하지 않고, 타쿠와 타츠키는 오히려 서로 고타로우가 귀엽다는 듯이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한편, 고타로우는 옷도 서둘러 입고 달려갔다. 사로는 친하지 않았지만, 빨리 시아와 타로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지칠 줄도 몰랐다.
놀이터까지 뛰어갔을 때였다. 정신없이 뛰어가던 고타로우는 미끄럼틀 위에 누군가 누워, 아니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방향을 틀어 그 쪽을 향해 달려갔다. 놀랍게도, 온 몸이 심한 상처투성이었다. 그런데, 상당히 낯이 익고 그리운 표정이었다. 뒤에 달린 하얗고 아름다운 날개도.......

“미샤누나!”

고타로우가 소리쳤다.......

[예고]
미끄럼틀 위에 상처투성이로 쓰러져 있던 미샤,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같이 있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고타로우가 인정해서 또다시 천사의 자격을 잃은 것일까? 미샤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 고타로우, 과연 그 진실은?
미샤의 송환을 요구하는 천계. 천계는 과연 왜 송환을 요구하는 것일까. 마계는 어떤 결론을 내릴 것인가. 그리고 미샤의 운명은?
다음 이야기 돌아온 친구들을 맞이하는 방법- 두번째 이야기(일단 여기까지는 써 놓은 자료가 있긴 합니다)

에구. 일단 올리긴 했는데....... 다 읽으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네염. 좀 지루하실 듯....... 수정으로 대화를 한칸씩 띄어놨어요. 조금이라도 편하면 좋겠네요. 혹시 읽으신 분이 있으시면 오류는 따끔하게 집어주시기를.......
  • ?
    Cute☆미샤★ 2005.06.14 15:59
    -ㅁ-... 잘쓰신다아아...
  • ?
    元追~ミリコ 2005.06.16 22:31
    이건 양이 많다;; 혹 어딘가의 것을 가져오신 건 아니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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