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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약간 껴 있는 아침이다. 고타로우는 혼자 학교로 걸어가고 있었다. 평상시라면 고보시와 다카시가 함께겠지만, 둘은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는지 결국 하루 결석이라고 오늘 아침 일찍 전화가 온 것이다. 고타로우도 지금 머리가 상당히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술마셔서가 아니라 어제 하루 종일 파티의 뒷정리를 하느라 잠을 설친 것이다.

‘도대체 무슨 쓸데없는 짓을 한 거야....... 난 정말.......’

다 청소하지 못한 부분을 시로가 간단하게 마법같은 것으로 정리하는 장면을 본 것과 어제 술을 마셨음에도 옆집에 있는 사람들 모두 다 멀쩡하다는 사실은 고타로우의 머리를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약올라서.......). 밤을 새워가면서 그런 살인현장 같은 난장판을 정리했는데 시로가 나오자마자 마법으로 순식간에 정리하는 장면을 본 그 쓴맛이란........ 이런 저런 불만을 생각하면서 교문을 지나갈 때,

“고타로우!”

뒤에서, 아주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뒤 돌아 섰을 때, 고타로우는 그 자리에서 가루가 되어 무너지는 듯 했다.
교복이다. 그것도 남자 교복. 뒤에 중학생이 쓸 만한 것이 못되는 토끼모양의 가방을 달고 있는 희안한 학생. 긴 머리는 어느새 짧아져 있지만 여전히 달려있는 토끼모양의 머리핀. 여자라는게 팍팍 티가 난다(적어도 고타로우의 눈에는) 척 보기에 ‘난 이상한 사람입니다.’ 라는 것을 말해주는 사람. 상당히 귀여운 외모와 천진난만한 미소가 매력포인트랄까.......

“미샤누나!”

“헤헤.......”

“잠깐, 헤헤가 아니잖아요.”

큰 목소리에 모두들 시선집중

“괜찮아. 시로씨가 남자로 변장하는 약을 줬거든.”

“그게 아니라....... 시로씨라구요?”

예상 외의 이름이 거론되자 고타로우는 상당히 놀랐다. 그 말은 즉슨 미샤가 이 학교에 이런 남장 꼴로 나타나게 한 장본인이.......

“지각한다, 고타로우. 서두르는게 좋을 거다.”

뒤에서 나타나는 또다른 익숙한 목소리. 이 남자를 굳이 묘사하자면 금발의 머리에 거의 있는 입. 다카시하고 맞먹을 정도로 잘생긴 얼굴에 단정히 차려입은 정장. 목에 항상 달고 있는 방울. 매력포인트는 어딘지 모를 깊고 슬픈 눈이라고나 할까나........


하루쯤 전.

“내일부터 학교에 갈 테니 다들 준비해라.”

천사들을 쫓아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시로가 맨 처음 한 말은 이 한마디였다. 그리고 곧,

“....... 뭐하는 거냐.......?”

하는 한심하다는 말이 덧붙여졌다. 그도 그럴것이 리드가 공 위에서 묘기를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로가 말하자, 리드는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 그대로 공 위에서 떨어져 버렸고 다른 사람들은 배를 잡고 있는 상태로 리드를 잠시 바라보았다. 짧은 침묵이 끝나고,

“우와! 정말요? 딴소리 하기 없기! 만세!”

라며 미샤가 숨도 쉬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아직도 돌이 된 채로 굳어있는 리드를 붙잡고 빙글빙글 돌렸다.

“어이, 잠깐. 괜찮은거야?”

이어서 타로의 반론. 확실히 위험을 사서 하는 꼴이 되기는 하다.

“하지만 고타로우 옆에 붙은 천사가 너무 많아. 어차피 최종적인 목표는 미샤겠지만 고타로우가 위험한 건 확실하니까 그냥 둘 수는 없어. 그 피도 피이니만큼........”

“응?”

“아, 아니. 어쨌든 난 미샤만 보낸다고는 안했다. 다 같이 가는 거야. 위험 문제는 괜찮다.”

“잘됐네요. 저도 기뻐요.”

기뻐하는 시아. 타로는 그런 시아를 잠시 바라보더니

“뭐야. 결국 너도 집안에만 틀어박히는게 심심했다 이거냐?”

“시끄러.”

“근데....... 모두 학교에 가서 뭐 할거라도 있어?”

“그 설명은 나중에.......”

시로는 그대로 리드를 향해 돌아섰다.

“리드, 넌 유치원이다.”

“뭐!!!”

방금 전 미샤의 손에서 미끄러져 벽에 쳐박히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리드의 외침.

“고타로우가 위험하다면 시노도 만만치 않아. 애완견인 척 하고 따라가.”

“내가 왜!!!”

“귀여우니까. 아까도 잘 놀더니만. 딱 맞잖아.”

“.......”

잠시 썰렁한 바람이.......

“다른 불만은?”

“으~~”

리드는 자신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머리를 싸 매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무언가 생각난 듯 당당한 포즈로 시로를 향해 섰다.

“너 말야! 애초에 지원을 부르면 되는 거 아냐! 뭐하러 이런 귀찮은 일을 하는 건데!”

“싫어.”

“어째서?”

“그건 네가 더 잘 알텐데?”

또다시, 리드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다른 사람이 보면 단순한 고집으로 한바탕 싸움이 일 듯 하지만 리드는 무언가 알고 있는 듯 더 이상 불만을 터뜨리지 못했다.

“제길, 망할 신에자식!!!!!!!”

“알았으면 그냥 해라.”

“싫어! 제기랄! 이 망할 자존심만 쎈 자식!”

“어차피 다들 나가고 싶었으니까 상관은 없겠지?”

“당연히!”

“안전하다면 상관 없겠지.”

“좋아요.”

“난 반대야!”

아무도 끝까지 반대하는 리드의 말을 듣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타로의 제안으로 이 일은 오늘까지 불문에 붙여지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교실 안. 그리하여 어제 술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는지 쌩쌩한 표정의 타츠키와 타쿠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로. 히로시는 기운이 없는 상태로 엎어져서 어떠한 일로 다른 학교로 가게 된 옛 영어선생님과 눈물의 이별을 하고 전근 오게 된 ‘새 외국인 영어선생님’ 에게서 첫 수업을 듣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이제 수업이 끝나면 남장을 하고 찾아온 새 선배 때문에 또 날라야 할 운명이다.

“선생님. 애인은 있으세요?”

첫 수업시간이니만큼 선생님을 좀더 알고 친해지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질문시간이다. 그리고 젊고 잘생긴 선생님이 왔으니 애인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이런 규칙은 현실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없다.”

많은 애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시로는 한마디로 끝내버렸다.

“에이! 거짓말, 그럼 올해로 몇세?”

다른 아이의 질문

“약 이백살이다.”

짧은 한마다........ 고타로우는 움찔. 시로도 실수란 것을 안 듯 금방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에이 놀랬네. 투엔티는 이십이에요. 이십. 원어민이라서 잘 모르는 것도 있구나. 그건 그렇고, 목에 있는 그 방울은 뭐에요?”

대충 또 넘어간 건가. 항상 이상한 이유로 넘어간다. 어쨌든 고타로우는 한숨 한번 쉬었다. 하지만, 어쩐지 시로는 계속 위기인 것 같다. 방울을 꼭 쉬고 안절부절 못하더니

“선물 받은 거다.”

한마디로 간략히 끝냈다. 다시 침착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런 시로의 모습은 학생들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냥 지나칠 리가 없지.

“에이, 애인한테 받은 거죠?”

“역시 없을 리가 없다니까. 애인 누구에요?”

끈질기게 애인 문제로 달라붙는 고타로우 반의 착한 어린이들. 시로는 계속되는 질문 공세에 안절부절. 그런 혼란 속에서 히로시는 계속 엎어져 있었고 타츠키와 타쿠는 여전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 식으로 일단 첫 번째 놀랄 일은 가고.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 고타로우는 이미 겪었지만 이제 나머지들은 새 선배님을 맞이해야 할 시간이 찾아온 거다.

“띵동.”

하는 쉬는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1초도 안 되서 문이 열리고,

“고타로우!”

하며 달려드는 천사....... 그리고 시달릴 대로 시달려서 신경쓰지 못하고 엉망으로 비틀거리며 나가는 시로. 불쌍하다. 아마 앞으로 몇반 더 돌면서 똑같은 시련을 당해야 할 것이다. 라는 이야기는 관두고 타츠키와 타쿠는 방금전에 달려온 선배님을 충격 먹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우냥, 고타로우. 보고싶었어.”

.......

한 남자가 다른 남자를 껴안고 이런 대사를 지껄인다면 누구나 당연히 오해한다. 아니, 오해 해야 한다. 추가로 뒷통수를 한대 갈겨주어야 한다. 안 그럼 머리에 뭉쳐진 지렁이밖에 안들은 거다. 어쨌든 얼굴이 빨개진 고타로우는 재빨리 미샤를 떼어놓고 저쪽으로 떨어졌다.

“잠깐.......”

고타로우가 충고의 한마디를 하려는 찰나

“미샤누나! 어떻게 된 거에요?!”

타쿠의 한마디. 타쿠, 지금은 형이라고 해야되. 다른 반 아이들의 의심에 찬 눈빛은 고타로우를 절망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중이다.

“누나라고? 형이 아니고?”

“아니 형 맞아. 그러니까 먼 친척의.......”

나름대로 고타로우가 머리를 굴리며 장황하게 설명해서 못 알아듣게 해서 대충 넘어가게 하려는데.

“아냐. 누나 맞아. 고타로우 옆집에 살아.”

타츠키의 쐐기. 고타로우는 순간 입을 연 채로 얼어버렸다.

“잠깐만, 그렇게 확실히 말해버리면.......”

“있지, 있지. 저 누나 고타로우의 애인이다. 지난번에 자기가 말했어. 고타로우도 부정하지는 않구.”

타쿠의 말에 잠시 모두들 침묵. 그리고 천천히 솟아오르는 열기를 고타로우는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용암이 올라오는 듯한.......

“우오오!”

다른 아이들의 빛나는 눈빛에 당황하는 고타로우. 남중에서는 아주 가끔 애인이야기가 나오면 극도로 흥분하는 애들이 있다(여기 글 쓰고 있는 사람이 그중 하나). 여기는 좀 많은 편이지만.......

“으앗! 설마 고타로우 보려고 남장하고 찾아온 거야!”

“뜨거워~”

“진짜 부럽다. 나중에 결혼해서 행복해야해!”

여기저기서 나름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비밀 지켜줄게....... 절대 깨지면 안돼.”

누군가는 아예 훌쩍거리면서 고타로우의 등을 두들겨주기까지 한다.

“그만해~~~~~~~!”

고타로우의 비명. 그리고,

“으~ 왜 이렇게 시끄러.”

그 난장판 속에서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술기운에 쓰러져 자고 있던 히로시가 눈을 떴다.

“안영 히로시~!”

....... 미샤누나. 지금 무지 심각한 상황인 것 같은데 히로시까지 끌여들여서 뭐하려고....... 하지만, 히로시는 왠지 멍한 표정으로 미샤를 바라보고 있다. 보통 때라면 기뻐서 달려들게 뻔한데........

“누구야?”

꽈당! 고타로우 외 2명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렸다.

“선배야 선배. 전학온.”

누군가가 뒤에서 말했다. 여자라는 내용의 이야기는 당연히 없다. 히로시가 의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실수로 흘리는 말이 많아서 상당히 신용을 잃은 상태다.

“아.......”

갑자기, 히로시가 입을 벌렸다. 들킨 건가.......

“천사같은 분이시다.......”

다시 한번, 이번엔 모두들 다같이 쓰러져 버렸다. 뭐 히로시 답다면 히로시 답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잘 부탁합니다. 전 히로시라고 합니다.”

“응. 난 미샤야.”

“아, 역시 이름도 천사같으시군요.”

둘의 대화를 듣던 고타로우는 일어서다가 다시 한번 미끄러져 쓰러져 버렸다.


“푸훗, 하하하하....... 표정이 왜 그래.”

다음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 미샤를 등에 매단 상태로 행정실로 불려간 고타로우는 거기서 약간 한가하게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타로를 발견했다. 당연히 고타로우의 표정은 ‘어의가 없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미 시달릴 대로 시달려서인지 놀란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타로 형....... 여기서 뭐 하시는 거죠?”

“보다시피 업무 수행중.”

원하던 대답은 아니지만 거짓말은 아니다. 지금 타로는 무지 즐거워 보인다. 마치 천직을 얻은 듯한 모습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타로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타로가 고타로우 귀에 대고 바로 옆에 매달려 있는 미샤의 귀에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천사가 너를 노리고 있대. 그래서 아침에 다들 나온 거야. 안 그래도 집안에만 있기에는 뭐하니까 핑계삼아서.”

별로 걱정하지 않는 듯한 말투지만 순간 고타로우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뭐, 본인 말로는 이정도면 충분하다니까 괜찮겠지. 상관 없을 거야.”

타로는 말을 마치려 하다가 고타로우의 표정을 보고 잠시 생각하더니

“걱정 말구 맘껏 즐기라구. 애인도 옆에 있잖아.”

라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순간 굳어있던 고타로우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에에, 무슨 소리야?”

둔감한 미샤의 한마디 질문

“미샤하고 고타로우하고 서로 사랑한다는 뜻이야.”

타로가 윙크하며 미샤에게 대답해 준 뒤 다시 고타로우를 향해 장난끼 있는 표정을 보이며 말해싸.

“자, 그럼 시아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번엔 점심시간. 아마 전국을 뒤져봐도 전교생이 동시에 밥을 먹기 위해 줄이 급식실 입구부터 운동장까지 ‘길고 두껍게’ 서 있는 경우는 드물꺼다. 본래 학교 급식이 맛이 맛이니만큼 이니까(작가의 편견). 하지만 고타로우의 죠대부중은 오늘부터 더 이상 아니다. 19살 낭랑 소녀의(약혼자가 있다는 건 애저녁에 알려졌지만, 그건 인기에 별로 장애가 안된가) 천사같은(물론 악마지만) 미소를 볼 수 있는데다가 그녀의 노하우로 나온 천상의 음식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어디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면 흉내도 낼 수 없는 화려한 맛의 조화. 선생님과 학생들이 서로 먼저 먹겠다고 싸우는 난장판 속에 고타로우 일행도 서두르지 않았으면 종 칠때까지 줄 서고 있어야 할 불행이 닥칠 뻔했다.

“우으~.”

갑자기 몸을 떠는 타츠키

“왜그래?”

“넘 행복해! 이제 매일 시아누나의 요리를 점심시간마다.......”

이미 눈은 맛이 가 있다. 뭐, 이런 행복에 빠진 아이들도 몇 명 있었고.......

“우와 고타로우. 역시 함께네.”

“뜨거워~”

“헤헤.”

“시끄러!”

고타로우와 미샤를 보고 놀리는 같은 반 아이들도 있었고.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차례를 기다리던 고타로우는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시아누나를 발견했다.

“아, 저기 말이죠. 제 이름은.......”
 
“야! 빨리 안비켜?! 밥 좀 받자!

“뭐야! 이야기 좀 한다고 밥 못 먹냐? 제 이름은 쇼우에요, 쇼우. 꼭 기억해 주세요~~!”

........ 대 혼란 상황이다. 시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시끄러! 빨랑 자리에 앉아서 밥 못먹지! 굶고 싶냐.”

간신히 다른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혼란은 어느정도 수습되고, 드디어 고타로우 일행이 ‘얌전히’ 밥을 받을 수 있는 차례가 되자.......

“으악! 뭐냐? 이 사악한 기운은.......”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누군가의 불평. 반사적으로 고타로우와 타츠키, 타쿠는 목소리의 주인공의 뒷통수를 퍽 때렸다. 히로시다.

“히로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까지.......”

고타로우는 화가 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냐! 고탈우. 네놈은 이 사악한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냐? 이 무지한!”

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히로시인가. 자기 할말 다하는 게 히로시의 특성이다. 물론 주위의 넘쳐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살기를 느낄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여튼 이런 사악한 음식을 애들이 먹는다면 틀림없이 식중독 내지.......”

“빠악!”

갑자기, 히로시의 뒷통수에 누군가가 던진 식판이 작렬했다.

“누구냐!”

“먹기 싷으면 안먹으면 되잖아!”

“장난이라도 좀 심한거 아냐?”

“도대체 처음 본 사람한테까지.......”

여기저기서, 식판과 욕설이 히로시를 향해 날아왔다. 이번에는 식당 아주머니도 말릴 생각은 전혀 안하는 것 같다.

“으~. 이 무지한 놈들.”

마지막까지 제 할말을 다하고 밖으로 사라지는 히로시. 히로시가 나간 입구를 향해 한동안 차가운 시선들이 머물렀다.

“히로시 정말 너무한다니까. 어제는 그렇게 잘 먹었으면서.”

“그러게 말이야.”

타츠키와 타쿠의 한마디. 확실히, 왜 오늘따라 히로시는 시아가 만든 음식에까지 시비를 걸까.

“자, 고타로우. 받아요.”

시아가 밥을 퍼서 고타로우에게 주자 고타로우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시아누나.”

“네?”

“미안해요. 괜히 이런 말까지 듣게 해서.......”

“아니에요. 전 여기서 일하게 되서 기쁜데요, 뭘.”

시아가 웃으면서 말하자 고타로우는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어떤 의미에서는 천사보다 더 천사같다. 물론 실수투성이 천사도 천사라면 맞겠지만.

“그나저나 미샤씨도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응! 고타로우랑 같이 있게 됬는걸?!”

“네.”

한순간 고타로우의 얼굴이 빨개졌다. 고타로우는 한손으로 볼을 비볐다.

“저기, 시아양?”

“네?”

고타로우가 반찬까지 다 받고 뒤돌아서자 뒤에서 한 아주머니가 시아를 불렀다.

“저기, 이 양념말인데.......”

“아, 이건 양파???.......”

즐거운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시아를 보던 고타로우는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가 앉았다.


그런 일이 진행되고 있는 한편,밖으로 쫓겨난 히로시는 한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양호실로 끌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뭡니까? 유서 깊은 미라타이 가문의 피가 이정도 감기에 쓰러지기라도 할 것 같습니까! 우습게 보.......”

“닥치고 가만히 누워있어!!!”

“빠악!”

눕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던 히로시는 선생님의 업어치기를 머고 쓰러졌다. 미술 선생님. 평범하지만 단정한 외모를 지닌 젊은 여선생님이다. 연약해 보이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선도부를 맡고 있는 무서운 무술실력을 지녔다. 전에는 공립 학교에 있었는데 조직폭력배들과 싸워서 전원을 병원에 입원시킨 일로 문제가 되어 이 사립학교로 오게 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있다(하지만 소문은 사실을 근거로 하기 마련이다). 명문 중학교는 맞지만 점점 보면 볼수록 이상한 학교.......

“그 열이 그냥 감기냐? 주둥이 다물고 엎어져서 가만히 있어. 아님, 뭐냐. 감기가 아니면 머리가 열 받아서 그렇게 뜨거워진 거냐? 아무래도 머리 속에 갇혀서 뇌가 많이 뜨거운 모양인데 끄집어내서 식혀줄까?”

“큭.”

장황한 말. 추가로 말투도 외모와는 다르다.

“어이, 이녀석 잘 부탁해. 반항하면 묶어버리고.”

“아, 네.”

완전히 쫄아있는 양호선생님에게 짧게 한마디 하고 미술선생님은 나가버렸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양호 선생님은 얼핏 보면 학생과 같은 나이로 보일 정도로 귀엽게 생긴 남자 선생님이다. 참고로 이미 고등학생의 건장한 청년을 아들로 두고 있는 중년 남자라고 한다. 진짜 이상한 중학교.
이런 쓸데 없는 이야기는 그만두고, 히로시는 가만히 누워 있었다. 처음에는 오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점점 정신이 몽롱해져 가고 있었다.

‘도대체 어째서, 그 악마의 요리에까지 사악한 기운이....... 무슨 생각이냐. 시아.“

몽롱해져 가는 속에서, 히로시는 혼자서 멋들어진 음모설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릭 잠이 오기 직전, 히로시는 희미하지만 무언가 끓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한편, 시로는 운동장 구석에 있는 나무 아래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하늘을 보고 있었다. 천사다. 수많은 천사들. 오늘따라 무언가 특별한 움직임이 보이는 것 같은데........ 시로의 경계를 느꼈는지 그들은 하나 둘 기척을 감추었다.

“여기서 뭐 하시는 거죠?”

천사들의 기운이 모두 사라지자 누군가가 시로를 불렀다. 시로가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고타로우가 서 있었다.

“....... 좀 있으면 종 칠거다. 빨리 들어가.”

“괜찮아요. 점심시간 끝나는 처음 종은 예비종이니까.”

고타로우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왜 다들 밖으로 나오게 해 주신 거죠?”

라고 물어보았다.

“싫은가?”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고타로우는 얼굴을 긁적이며 말했다. 시로는 어느샌가 목에 걸린 방울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천사가 너를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 못들었나?”

시로는 이상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건 아니지만....... 역시 다들 밖으로 나오게 해 주려는 게 아닐까 해서 말이죠.”

고타로우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저 놀리고 싶어서 온 거냐? 많이 밝아진 것 같군.”

“자상하시군요.”

시로는 고개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고타로우는 그걸 부끄러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샤는 어디에 있나?”

시로가 물었다. 이번에는 고타로우가 부끄러워 할 차례였다.

“아니 저기....... 잠시 떼어놓고 왔는데.......”

“빨리 안감녀 아마 울거다.”

“윽.”

타로와 맨날 말싸움을 해서인지 상대방의 약점을 잡는 것도 수준급이다. 고타로우는 움찔했다. 그때, 예비종이 울렸다.

“어째서, 밖으로 나오게 하려는 의도라고 생각했지?”

달려가는 고타로우에게 시로가 물었다. 고타로우는 빙긋 웃으면서

“즐거워 보였으니까. 다들.”

라고 대답했다.

“그런가. 좋은 일이군.”

시로도 기분이 좋은지 미소를 완전히 감추지 못하고 입가에 살짝 미소가 보였다.

“♩

“차렷! 경례!”

“감사합니다.”

“그럼.”

종례가 끝났다. 고타로우는 타츠키와 타쿠와 함께 재빨리 뛰어나가 교문 앞으로 갔다. 교문 앞에는 시로와 타로, 시아, 미샤 그리고 시노와 시노를 업고 있는 리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리드 입에 있는 조그만 공의 정체는.......).

“고타로우~!”

고타로우가 나타나자 여느때처럼 미샤가 달려왔다. 순간, 미샤의 몸이 살짝 빛나더니 다시 본래의 모습, 즉 여자로 돌아왔다.

“우왓!”

타츠키가 외쳤다. 고타로우는 놀라 주위를 둘러 보았짐나 타츠키와 타쿠 외에는 본 사람이 없는 듯 했다(그러니까 피타텐은 이상한 이유로 대충대충 넘어간다니까.......).

“마술이에요?”

“맞아, 아마도.”

놀라서 외치는 타쿠의 물음에 고타로우는 딴소리가 나오기 전에 냉큼 대답했다. 그 사이에 달려오던 미샤는 고타로우를 끌어안으면서 엎어졌다.

“으~ 미샤누나.......”

고타로우는 얼굴이 빨개진 타츠키와 타로를 애써 외면하면서 미샤를 떨쳐냈다. 타로가 옆에서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오늘은 학원 수업이 있는 날인가?”

“아, 네.”

시로가 묻자 고타로우가 대답했다. 시로는 아쉽다는 표정을 짓더니,

“개인적으로는 학원을 그만 두었으면 하지만....... 어쩔 수 없군. 리드를 데리고 가라.”

“윽 귀찮게.......”

“불평 하지 말고 가.”

“.......”

리드는 아무 말 없이 올려다보다가 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에엥. 고타로우랑 떨어지기 싫은데.......”

“미샤누나.”

미샤가 울상을 지으면서 말하자 고타로우가 단호한 표정으로 미샤를 불렀다. 모두 고타로우를 바라보았다.

“다녀올게.”

잠시 뜸을 들인 후 고타로우는 표정을 풀며 부드럽게 말했다.

“응! 다녀와!”

미샤 또한 잠시동안 말이 없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 근데 히로시는 어디 있는 거지?”

“그러고 보니 오후부터 안보였네....... 어쩐지 교실이 조용하더니만.......”


그 히로시 이야기
히로시는 눈을 떴다. 창문 밖에는 이미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보였다.

“오후 내내 잔건가? 윽!”

갑자기 히로시는 가슴을 움켜잡으며 몸을 웅크렸다. 통증은 길지 않았다.

“뭐야.......”

통증이 끝나자 히로시는 일어났다. 순간, 히로시는 몸이 놀라울 정도로 가벼운 것을 알아챘다. 마치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

“아, 히로시 일어났니?”

양호선생님이 히로시를 불렀다.

“네, 괜찮으니까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래도 감기가 다 난건 아닐 테니까 몸 조심하고.”

말 뿐만이 아니라 끝까지 표정까지도 귀여움이 넘쳐나는 말투다. 히로시는 잠시 관자놀이에 땀이 샜다.

“네.”

짧게 대답하고 양호실에서 나간 히로시는 탈의실로 갔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자 무언가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대로 히로시는 다리에 힘이 빠져 무릎을 꿇었다.

“으~ 오늘 오후 내내 미샤씨를 못보다니.......”

히로시 머리 여기 저기에 도깨비 불이 생기기 시작했다. 모두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건 무시하고 혼자만의 암흑에 빠져 훌쩍이고 있는 히로시. 그런 히로시를 정신 차리게 하는 것은 무언가 사악한 기운이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보니 누군가가 비틀거리면 서 걸어가고 있었다. 등 뒤에는 익숙하게 생긴 악령.......

“악령 퇴치!”

평상시처럼 히로시는 그 사람에게 자시느이 트레이드 마크를 외치며 달려들었다. 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붙인 부적이 밝게 빛난 점이라고 할까.

“윽, 뭐야!”

한순간, 처음 일어나는 일에 히로시는 깜짝 놀라 외쳤다. 한참 동안 부적에서는 빛이 계속 나오다가 조금씩 사라져갔다. 악령과 함께.

“아, 갑자기 몸이.......”

갑자기, 혈색이 돌아 건강해 진 그 사람이 말했다. 자세히 보니 좀 외소해 보이긴 해도 운동선수처럼 튼튼해 보인다.

“우와, 정말 고마워 학생! 이거 아무도 못고치던 병인데....... 혹시 학생 만화에 자주 나오는 퇴마사 같은 사람이야?”

남자가 감동해서 히로시의 손을 잡고 흔듬녀서 말했다. 처음 보는 반응에 히로시는 당황했다. 당연히 그동안에는 상대방은 아무 것도 모른채로 화를 내야 했으니까.

“교복 보니까 죠대부중이네. 이름이 뭔지 알려줄 수 있니?”

잠시 히로시는 우물쭈물 하다가 가슴을 활짝 펴고 배에 힘을 주었다. 칭찬에서 나오는 그런 당당함이 히로시의 장점이니까.

“미라타이 히로시라고 합니다!”

“아, 히로시라고 하는 구나. 어쨌든 정말 고마워.”

한동안 난생 처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받던 히로시는 남자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히로시는 이제야 세상이 나를 알아 준다는 등의 자화자찬을 하며 아직도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중.

“그래, 이렇게 된거. 이 동네에 있는 악령들을 모조리 다 쓸어버려주마!”

손을 높이 들고 외치는 히로시.


한편, 고타로우와 리드는 학원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쪽은 리드의 일방적인 대화가 계속되는 중이다.

“확실히 유치원이라는 게 좋기는 좋은 것 같더군....... 애들도 착하고 공도 그냥 공짜로 주고. 아, 그렇다고 내가 애들ㅇ르 좋아한다거나 생각 외로 귀여운 이미지를 가졌다고 오해하지마!”

“네,네.”

아까부터 이 이야기다. 말은 그렇지만 걸어오는 내내 공으로 다양한 묘기를 부리고 있는 리드의 모습은 멋있다고는 절대 할 수 없다. 아무래도 다음에 공 여러개 선물해 줘야 할 것 같다.

“아, 여기가 제 학원이에요.”

고타로우가 말했다. 평범한 회색빛 딱딱한 건물이다.

“그럼 다녀 와.”

“저기 그런데....... 밖에서만 기다려도 되겠어요?”

“마견신에게 그 정도는 기본이야!”

“네.......”

고타로우는 약간 걱정된다는 눈빛으로 리드를 잠시 바라보다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저 강아지 좀 봐.”

“귀엽다.......”

주위에서 탄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고타로우가 학원으로 들어간 지 얼마 안되서의 일이다. 공으로 놀고 있는 리드의 모습은 영락없이 귀여운 애완용 강아지. 주인 없는 떠돌이 개같이도 보이는 게 흠이긴 하지만, 리드 본인은 주위의 그러한 시선에는 신경 쓰지 않는 듯 계속 놀고 있었다. 그렇게 놀고 있던 중, 리드는 공을 놓았다. 주위의 시선이 갑자기 신경쓰인 것은 아니었다. 눈 앞의 골목을 바라보며, 리드는 중얼거렸다.

“기분 나쁜....... 기운.”

천천히 리드는 그 기운이 나오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골목길 여러개를 돌고 담을 몇 개 건너자 나타난 것은, 시로가 말한 애송이, 히로시였다.

“뭐 하고 있는 거냐.”

리드가 목소리를 깔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히로시가 돌아보았다.

“악령 퇴치 중이시다.”

퉁명스럽게 대답한 히로시는 다시 뒤돌아서서 어디론가 걸어가려고 했다. 히로시의 손에는 이상한 구슬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구슬에 담긴 것은.......

“그 구슬에 있는 것들 빨리 놔줘.”

“뭔 참견이냐. 이건 사라지지 않는.......”

“강력한 악령이 아니야.”

잠시, 둘 다 침묵하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승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남은 지박령. 아직 승천하지 못한 순수한 영혼에다가 집을 수호하고 있던 수호정령까지....... 많이도 잡았군.”

리드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히로시는 리드의 말을 별로 신용하지 안흔ㄴ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도 악령, 아니 악마였지.”

순간, 리드는 히로시에게서 살기를 느꼈다.

“뭐야! 해보자는 거냐!”

순간 히로시가 부적 여러개를 던졌다. 종이가 똑바로 날아 간다는게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리드는 순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날아오는 부적들을 발톱으로 찢어버렸다. 찢어진 부적은 약한 빛을 내더니 사라졌다.

“뭔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그 정도로는 악마를 잡을 순 없어.”

“큭.”

약올리는 리드의 말을 듣고 히로시는 움찔했다. 그리고, 리드가 입 안에 검은 공 같은 것을 만들더니 그것을 히로시에게 날려 보냈다. 너무 빨라서인지, 히로시는 피하지 못하고 복부에 맞고 엎어졌다.

“훗, 좀 놀랐지만 애송이는 애송이야. 그냥 기 덩어리를 맞고 쓰러지다니.......엣? 잠깐!”

혼자서 폼잡고 중얼거리던 리드는 갑자기 놀라서 달려갔다. 히로시 쪽에서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이, 이봐! 설마 죽은 거야? 이거 야단났네.”

놀라 히로시를 툭툭 건드리며 외치는 리드. 하지만, 순간 히로시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눈을 뜨고 씨익 웃었다. 그리고 나서 부적을 하나 꺼내들더니 리드에게 가져다 붙였다.

“제악선연(制惡善淵 악을 제압하는 선한 연못).”

주문과 함께, 리드는 발 밑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놀라 아래를 바라보니, 부적이 가운데 있는 빛나는 큰 구멍이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뭐야, 이건!”

그리 어렵지 않게 탈출했지만, 리드는 놀람이 쉽사리 떠나지 않았다. 주문은 다르지만 히로시가 사용한 것은....... 다른 생각을 할 여유를 주지 않는 히로시. 부적을 여러개 공중에 띄우더니 동시에 그것을 리드를 향해 날렸다. 빛을 내며 화살 모양으로 바뀌면서 똑바로 리드를 향해 날아가는 부적. 리드가 피하자, 유도탄처럼 따라왔다.

“다크 버클러!”

리드가 주문을 외우자 검은 둥근 방패가 리드의 얼굴 앞에 생겼다. 화살들이 동시에 부딫치자 방패와 함께 사라졌다.

“너....... 어떻게 천계의 주문을 아는 거냐.”

조금은 여유가 생기자 리드는 히로시에게 말했다. 히로시가 지금 쓰고 있는 주문들은 인간이 아닌 천사들이 대 악마용으로 쓰는 주문들이다. 인간은 절대 외울 수 없다. 마력의 그릇도 그릇이지만 천사의 선함은 인간이 따라올 수 없으니까. 그것을 히로시는 천사들이 가이아에게 도움을 청하는 말조차 하지 않고 쓰는 것이다.

“대답....... 뭐, 뭐야!”

이번엔, 리드는 움직일 수 없었다. 땅에서 흰 빛을 발하는 끈이 튀어나와 리드의 발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땅에는 이미 오망성이 그려져 있었고, 한줄기씩 나오는 빛의 끈은 차례대로 리드의 나머지 발들과 몸통을 묶어가기 시작했다.

“이건.......”

리드는 하늘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하늘에 떠 있는 대여섯 명의 흰 날개들을 보았다. 이건 히로시의 주문이 아니라, 천사들의 주문이다.

“각오해라!”

히로시는 리드를 묶고 있는 끈들에는 관심 없는 듯, 아니 그 끈들도 자신이 만든 줄 알고 있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리드에게 달려들었다.

“야! 잠깐 기다려!”

“성십자봉인(聖十字封印성스러운 십자가의 봉인)!”

리드를 묶고 있는 끈들이 사라지고 바닥에 십자가 모양이 빛나기 시작했다.

“으악!”

리드는 비명을 지르자 마자 사라졌다. 구슬 속으로....... 히로시는 그대로 잠시 서 있었다.

“으~ 대단해! 악마까지 붙잡다니!”

히로시의 자화자찬. 리드는 구슬 안에서 벽을 치며 소리치고 있었다.

“빨랑 못 꺼내! 이 애송이 자식이!”

하지만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히로시는 혼자 계속 잣니을 칭찬하고 있더니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 그래! 이젠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그 악마들을 모조리 다 없애 버리겠다!!!”

“이 바보가!”

리드는 창백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히로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가고 있었다.

“한심하군요. 설마 했지만 이런 인간에게 당하실 줄이야.”

갑자기, 누군가가 리드에게 말했다. 돌아보니, 아까 하늘에 떠 있던 천사들 중 하나였다.

“시끄러!”

“네? 죄송하지만 안들리는 군요.”

천사는 구슬에 귀를 가까이 대고 말했다. 천사의 귀에는 구슬 안의 대화도 들린다. 들리면서 약올리는 거다. 리드는 가만히 당하고 있을 운명이었다.

“그나저나 참 미숙한 인간이지 않나요? 이렇게 아주 조금 기색을 감추엇는데도 제 존재조차 눈치채지 못하다니........ 본인의 힘은 천계의 주문을 원리조차 가르쳐 주지 않아도 쓸 수 있을 정도인데 말이죠.”

“!!”

“어떻게 알려주었냐 말이죠. 그저 약간 속삭여 주었죠. 목소리만 전해주는 마법으로 말이죠. 어리석게도 히로시의 마법에 정신이 팔려 우리들은 눈치채치 못하고 보기좋게 당하셨지만요.”

“무슨 속셈이냐.”

리드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러자, 천사는 가볍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

“한 팀은 신에라고 하는 악마 쪽의 견제. 그렇다면 한동안 그쪽은 움직이지 못하겠죠. 다른 한쪽은 미샤쪽을 감시하고....... 그렇다면 당신이 이렇게 당하고 있어도 그 시로, 크라우스 또한 움직일 수 없겠죠? 그 사이에 고타로우를 납치해 좀 이용할 생각이었죠. 하지만, 당신이 이런 초보에게 당하는 게 꽤 재미있어서 담당 천사에게 신호를 좀 늦게 보냈죠. 어쨌거나 빈틈투성이 보안이에요. 이런 중요 인물을 허술하게 보호하다니.......”

“뭐얏!”

천사는 손가락을 리드의 얼굴 가까이에 대더니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며 튕겼다.

“끄아아악!”

“금방 정화시켜 드리죠. 저희도 더 이상 시간을 오래 끌.......”

“꽝!”

갑자기, 천사는 폭음과 함께 사라졌다. 아니, 날아간 거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신이 혼미해지는 속에서도 리드는 보았다. 정신을 잃은 채로 날려가는 천사와 그 뒤를 따라가는 세명의 악마를. 남은 것은 리드와 히로시였다.

“뭐지?”

히로시의 중얼거림과 함께, 리드는 천천히 정신을 잃었다.


“으윽.”

하늘 위. 잠시 정신을 잃은 천사가 본 것은 옆에서 떨고 있는 동료들과 그 속에서 부축을 받고 있는 붉은 날개의 천사, 칸쿄였다.

“날 넘 넘 만만히 봤어.”

천사는 눈 앞에 신에라고 하는 악마가 여유롭게 다가오는 것을 공포스런 눈으로 보았다.

“명색이 악마의 간부라고! 간부! 그정도로 머뭇거릴 리가 없잖아. 뭐, 그 덕택에 고타로우는 지켰으니 일단 그쪽의 약함, 고마워.”

웃으면서 말하긴 하지만 상당한 살기가 주위를 맴돌았다.

“젠장, 후퇴다!”

천사라곤 하지만 점점 악당같다. 천사들은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쳇, 이번엔 좀 위험했어. 천사들이 좀 머뭇거려서 다행이지.”

천사들이 사라지자, 신에는 크게 한숨을 쉬고 중얼거렸다.

“정말로....... 강제라도 지원을.......”

나르마가 화난 말투로 말했다. 신에는 저 멀리 걸어가고 있는 히로시를 잠시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히로시에게서 무언가를 받고 재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그 바보가 어떻게 할지.......”

“하지만.......”

“내가 어떻게 약올렸는지, 말해 주었었지?”

신에가 말하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이번엔 신에는 막 학원에서 나온 고타로우를 보았다. 리드를 찾는 듯 주위를 둘러보던 고타로우는 리드가 가지고 놀던 공을 줍고 잠시 서 있다가 집으로 향해 서둘러 걸어갔다.

“너흰 절재 애 건드리지 마라.”

“네...”

모두들, 수긍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미샤를 감시하고 있을 녀석들은?”

“다른 자들이 갔으니 괜찮을 겁니다. 실력 있는 자들이니 시로에게 들키지 않고 잘 처리하겠죠.”

“흐음.......”

“그건 그렇고 리드는 어떡하죠?”

카론이 신에에게 물었다. 신에는 한동안 고민하더니.......

“심각하게 정화를 당하긴 했지만 냅두자. 목숨에는 지장 없어. 그보다 시로가 저 히로시라는 애를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하지 않아?”

모두 잠시 생각하더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구해주면 그 구경을 못하잖아?”

신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타로우는 좀 더 서둘러 걸었다. 리드가 갑자기 사라져서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빨리 집에 가서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혹시 미샤누나에게 무슨 일이.......”

고타로우의 불안감은 더 커졌다. 고타로우는 아파트가 시야게 보이자 빨리 걸어와 좀 힘들긴 했지만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집 문에 다다르자 고타로우는 재빨리 문을 열었다.

“문 부숴 지겠다. 무슨 일 있어?”

타로의 첫 말. 고타로우는 그제서야 안숨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모두 무사한 듯 싶었다.

“고타로우! 다녀왔구나!”

“오빠!”

달려와서 끌어안는 미샤와 시노를 보고 고타로우는 좀 더 확실하게 안도할 수 있었다. 아무 일 없었어.......

“다녀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시아의 말을 들으면서 고타로우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리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안된 후였다.

“... 리드.... 는요?”

모두들 모르는 눈치였다. 그런 속에서 가장 놀라 보이는 것은 시로였다.

“같이 오지 않았나?”

시로의 질문에 고타로우는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사라져서요.......”

시로의 표정은 더욱 불안해져 갔다.

“아까부터 천사들의 이상한 기운들을 느꼈지만..... 이쪽도 방금 전까지 감시가 많아서 쉽게 움직일 수 없었는데.......”

시로가 말하자 모두들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때, 벨이 울렸다.

“리드인가?”

타로가 달려가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 앞에 있는 것은 다카시였다.

“에? 무슨 일이니?”

타로가 물었다. 그때, 저쪽에서 고보시와 카오루, 타쿠와 타츠키도 오고 있었다.

“아암, 졸려 죽겠는데....... 오빠는 어딨죠?”

그렇게 물어 보아도 이쪽에서는 대답할 게 없었다. 오히려 이쪽이 물어봐야 할 상황.“

“무슨 일 있었니?”

타로의 말에 고보시는 말 없이 이상한 쪽지를 보였다.

‘당장 고타로우 옆집에 모일 것. 악마를 봉인하는 걸 보여주마.’

“엉뚱한 짓 하는거 아닌가 해서 모두 걱정해서 온 거에요. 혹시나 해서 타츠키한테 전화해 봤는데 오늘 음식가지고 시비 걸 정도로 예민해 져 있다고 했거든요.”

카오루가 말했다. 그리고 타츠키와 타쿠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상시라면 무시할 법도 한데 왠일로 연락이 서로 됐는지 한결같이 모인 모양이다. 그나저나 빨리 리드도 찾아야 하는데 하필이면.......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헬리곱터 소리가 들렸다.

“하하하하! 다들 온 모양이구나!”

그리고, 낯익은 목소리가 모두를 큰 소리로 불렀다. 밖을 바라보니, 히로시가 헬리곱터에서 사다리를 잡고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중이다. 히로시가 다 내려가자 헬리곱터는 어디론가 날아갔다.

“뭐 하는 거야?”

“확실히 다들 모였군. 모두들 피곤할 테니까 시간끌지 않으마!”

갑자기 히로시가 무언가를 시아를 향해 던졌다. 시로가 재빨리 손으로 쳐 냈다. 부적이었다. 순간, 파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복도 바깥쪽 벽이 살짝 무너졌다.

“뭐냐?!”

모두들 놀란 표정. 하지만 시로만은 표정의 변화가 없다. 오히려 이상하게 안심한 표정인 것 같았다.

“자 봤지? 저녀석은 틀림없이 악마야!”

“그런거 함부로 던지는 니가 더 악마같아!”

작년부터 이어져 온 오랜 숙원을 푸는 히로시의 말을 다카시가 되받아쳤다.

“하지만 리드가 저렇게 엉망으로 당했다는 건 그냥은 상대하기 힘들다는 건데....... 아무래도 내려가야 할 것 같군.”

혼자서 무언가를 조용히 중얼거리던 시로는 그대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 자리에서 바로 땅 아래로 날아서.......

“우와!”

“자 봤지? 저래도 악마가 아니라고 할 테냐!”

“넌 평소에 더 이상해!”

히로시의 말에 이번엔 타쿠가 되받아쳤다. 성질 급한 히로시. 평소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답답했던 건 알고 있지만 너무 성급하다. 그나저나 히로시에게 저런 능력이 있었던가....?

“자 와라! 네녀석을 봉인하고 저기 있는 시아도 모두 봉인해주마!”

“누나라고 불러. 이 파멸급 멍청아!”

이번엔 타츠키의 외침. 하지만 히로시의 표정은 ‘두고 봐라. 어떻게 되나.’ 다. 아까 히로시의 능력을 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고타로우도 약간 불안하다.

“저기 있잖아.......”

그런 속에서 누군가 중얼거렸다. 타로였다.

“왜 난 빼는 거야?”

....... 장난인지 진짜인진 모르겠지만 어쩐지 따돌림 당한 것처럼 외로워 보인다. 그러고 보니 히로시는 타로에 대해 아무런 말도 안하잖아. 어제도 그냥 지나쳤지만 타로에 대해서는.......

“뭐? 너도 악마냐?”

히로시의 질문에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타로. 무슨 생각인지....... 어쨌든 그 대답에 히로시는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큭. 그럼 네가 제일 쎈 놈이냐?”

“어째서?”

“저 정도로 완벽하게 기척을 감추다니.”

멋대로 해석하는 히로시. 타로는 잠깐 미끄러졌다. 그건 그렇고. 잡담할 시간은 지난 것 같다. 시로가 지겨운지 먼저 손에 검은 공을 만들어냈다.

“저 검은 공 보이냐! 저 공에서 나오는 사악한 기운이.”

“으~ 지겨워. 시로 씨 파이팅!”

“왠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오빠, 나 좀 더 위로~”

모두의 외침과 고타로우에게 안겨 좀 더 위로 올려달라는 시노의 말. 어느새 모두들 아파트 아래로 내려가서 구경하고 있다. 이런 작은 소란 속에서 이상하게도 다른 집은 깨어있는 사람이 없다. 우연히 지나가는 사람도....... 신에가 구경한다고 벌인 일이다. 하지만, 고타로우들은 그런 것 까지는 신경쓰지 못했다.

“받아라!”

히로시가 부적을 여러개 날렸다. 부적들은 시로를 향해 빛의 화살 모양으로 바뀌면서 날아갔다. 하지만, 시로는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공을 만들지 않은 손으로 모두 쳐 냈다. 부적들은 힘 없이 타 버린다.

“제악선연!”

히로시의 외침. 리드를 빨아들이던 빛의 구덩이가 이번에는 시로 발밑에 생겼다. 하지만 시로가 손에 들고 있던 검은 공을 그 속으로 던지자 그 구덩이는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히로시는 다시 부적을 날렸다. 천사에게서 들은 주문은 3개 뿐이기에 공격이 단조롭다. 시로는 그 부적들을 쳐 내며 히로시를 향해 달려갔다. 다치지 않고 재빨리 기절시켜 끝낼 생각이다.

“훗, 아까 그 강아지보단 제법이구나!”

하지만, 어디에서 꺼냈는지 히로시는 부채를 들고 달려오는 시로를 막았다. 꽤 멋있게 잘 막는다. 시로가 힘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대등하게 보인다.

“우와. 생각 외로 멋있네.”

“저거 마법이라는 거야?”

모두들 탄성을 외치기 시작했다. 고타로우는 그들의 환호를 들으며 관자놀이의 땀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그들이 이런 싸움을 벌일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당황하지도 않고. 거기다가 마법을 처음 보는 마냥 감동하는 미샤누나는 도대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히로시는 부채로 공격을 하면서 손 안에 흰 빛의 공을 여러 개 만들었다.

“받아라!”

“!!”

예상외의 공격인 듯 시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재빨리 떨어져서 그 공들을 피하려고 했지만 너무 거리가 가까운 데다가 힘을 빼고 있었다. 시로는 그 공들을 모두 가슴에 동시에 직격당했다. 공들은 큰 소리를 내며 폭팔했고 흰 연기가 시로의 몸을 휘감았다.

“꺄아~”

“뭐, 뭐야! 아깐 잘 싸우더니만”

시노의 비명과 타로의 당황하는 말. 얼마 안가 빛이 사라지자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시로의 몸은 옷조차 흠집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로의 등 뒤에 나온 커다란 검은 것은.......

“앗.”

고보시의 외침. 날개다. 검은 날개........

“보이냐! 이제 저 녀석이 악마가 아니라고 할 수 있냐!”

“...”

모두들 소리 없이 입을 벌리고 있다. 시로는 당황해서인지 아까의 공격 때문인지 얼굴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이제 그만 사려져! 성십자봉인!”

히로시의 외침과 함께 시로는 마치 주문을 알고 있는 듯 땅 위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그 순간, 히로시는 미소를 보였다.

“꺄악!”

“으악!”

갑자기, 고타로우의 옆에서 비명이 들렸다. 고타로우가 옆을 돌아보자, 시아와 타로가 사라져 있었다.

“헉!”

그와 함께, 공중에 떠 있던 시로는 땅 위로 추락해 엎어졌다. 왠진 모르겠지만 굉장히 괴로워 보인다. 어떤 공격도 받지 않은 것 같은데.......

“이제 알겠냐. 미라타이 가문의 힘을!”

큰 목소리로 외치는 히로시. 시로는 가만히 엎어져 히로시를 응시하고 있었다.

“시로씨!”

“자, 이제 말해 주실까. 어째서, 악마인 너희들이 이 곳에 있는 건지.”

“...”

대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다. 시로의 안색은 점점 심하게 창백해 져 갔다.

“미샤 누나를....... 지키기 위해서 있는 거야.......”

보다 못한 고타로우가 대답했다.

“에엣? 고타로우는 알고 있었어?”

모두들 놀란 표정. 하지만 고타로우는 표정에 변화 없이 히로시를 응시고 있었다.

“웃기지 마! 악마가 인간을 지킬 리가 없잖아! 그리고 애초에 인간에게 악마 이상으로 위험한게 뭐가 있다고 지킨다는 거냐! 천사가 미샤씨를 지키기 위해 있다는 말이냐?”

약해져 있는 미샤의 힘은 느끼지 못했는지 히로시는 미샤를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쨌든 틀린 말은 아닌다. 악마가 인간을 지켜준다는 건 사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 판타지 주에는 개중에 그런 상식이 통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이야!”

“그런 말ㅇ르 믿을 것 같으냐! 넌 도대체 뭇느 생각으로 이녀석들을 감싸는 거냐!”

히로시가 두 팔을 하늘 높이 올렸다. 그러자 히로시 머리 위로 커다란 흰 빛의 공이 생겼다. 그때, 시로가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네... 잣대로 우리를... 판단하지 말아......라.”

힘겹게 시로가 한마디를 내뱉었다.

“불행을 추구하는 악마 주제에....... 잘가라!”

히로시는 경멸하는 말투로 말하더니 두 손을 힘껏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빛의 공은 시로를 향해 날아갔다. 비틀거리면서 시로는 그 공을 받을 생각인지 두 팔을 힘겹게 들었다.

“위험해!”

카오루가 외쳤다. 그 외침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고타로우는 시로를 향해 달려갔다. 시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울렸다. 그때, 고타로우의 손에 검은 무언가가 생겼다. 공 같은 것....... 고타로우의 눈에는 크기는 상당히 작지만 히로시가 날린 것과 색깔만 다를 뿐 똑같은 종류 같았다. 고타로우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그 공을 시로의 앞으로 날렸다.

“꽈아앙!”

크기 차이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폭음과 함께 두 공은 소멸했다.

“우왓!”

모두의 외침과 시로의 놀란 표정은 무시하고 고타로우는 시로와 히로시 사이에 섰다.

“너....... 어째서 악마의 힘을 쓰는 거냐! 너도 악마냐!”

히로시가 소리쳤다. 하지만 고타로우가 그 대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대답 하란 말야!”

이번엔 히로시가 부적을 날렸다. 하지만, 고타로우는 두 팔로 얼굴을 가리며 몸을 웅크렸을 뿐인데 빛의 화살같은 그 부적들은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윽.”

당황한 히로시의 말. 그때, 갑자기 미샤가 히로시 가까이로 다가갔다.

“미샤씨...”

히로시가 미샤를 불렀다. 고타로우도 당황한 듯 가만히 미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찰싹!”

순간 고타로우는 깜짝 놀랐다. 미샤가 양손으로 히로시의 양 볼을 때린 것이다. 갑자기 맞은 히로시는 더 놀랐는지 미샤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악마일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매우 소중한 사람들이야.”

미샤가 히로시의 볼에 손을 댄 채로 말했다.

“모두들, 인간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들이라고. 불행 따위를 바라는 사람들은 절대 아냐.”

미샤의 말이 떨리기 시작했다.

“빨리 놔줘. 모두들 괴로워하잖아.”

그제서야 고타로우는 히로시가 들고 있는 구슬과 그 구슬 속에 있는 시아와 타로, 그리고 리드를 보았다. 아까 시로가 안심한 표정을 지었던 것은 구슬 속에 있는 리드를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리드는 기절해 있었고, 나머지 둘은 시로와 마찬가지로 괴로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고타로우는 보았다. 미샤의 등에 나온 흰 날개와, 땅에 떨어지는 눈물들을.

“.......”

히로시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게 구슬이 깨졌다.

그리고 히로시의 주위에 시아와 타로, 그리고 리드와 수많은 다른 무언가가 나왔다. 악마들을 제외하고 나온 것들은 나오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졌다.

“미샤씨....... 천사인 당신이 어째서.......”

히로시는 혼란스러운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후....... 아슬아슬해서 혼났다.”

하늘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신에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정도로 끝날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나르마가 말했다. 뒤에 있는 악마 5명 정도도 동의하는 표정. 순간, 신에는 움찔했다.

“하마터면 간부인 시로와 악마 셋이 사라질 뻔한 문제, 그리고 인간에게 우리의 존재를 들킨 것까지....... 거기다가 다른 인간이 근처로 오지 못하게 결계를 치느라 그들을 도와주지 못한데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하의 신에님의 결계를 뚫고 들어온 ‘평범한 인간’이 5명이나....... 마계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이슈가 되겠군요.”

이번엔 카론이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신에는 한동안 부들부들 떨더니.......

“애초에 구경하자고 동의한 게 누구들인데! 너희도 많이 컸구나!”

하는 외침과 함께 주위에 있는 악마들을 즐겁게 패기 시작했다.

“으악!”

잠시동안 혼자 신나서 주위를 난장판으로 만들던 신에는 패는 것을 멈추고 나서 아래를 바라보았다. 모두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 상황을 설명해 주기 위해서이리라.

“어차피 있을 일이야. 우리와 가까이 있는 인간이라면. 솔직히 전에 고타로우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지나간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거 아냐? 거기다 문제가 생기면 기억을 지워버리는 조치를 취하면 간단한 거구.”

“얼랑뚱땅 넘어가는 건 좋지 않은 버릇인데.......”

나르마가 투덜댔다.

“시끄러! 틀린 말이냐!”

신에가 한방 더 먹였다.

“하아....... 기운 빠지네. 이제 그만 구경하고 가자.”

신에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말하고 사려졌다. 다른 악마들도 따라가는 듯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

고타로우 옆집. 모두 입을 벌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긴, 고타로우도 자신이 한 말이긴 하지만 정말 말이 안된다. 판타지 세계가 아니라면.

“하지만 아까 일을 봐서 믿지 않을 수도 없네요.”

카오루가 시로를 보며 말했다. 시로는 아직 잠들어있는 리드를 치료하고 있는 중이다.

“쳇, 도대체 악마가 왜 미샤씨를 지켜주는 거야!”

히로시의 말도 안된다는 말. 하지만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천사에게 당했군........ 히로시 솜씨가 아니야. 거의 정화당할 뻔했어.”

대답 대신 치료를 마친 시로가 말했다. 치료가 끝났음에도 리드는 일어나지 못하고 계속 잠들어 있었다.

“괜찮은 거야?”

타로가 걱정스런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시로는 대답 대신 고개만 가볍게 끄덕였다.

“저기....... 그런데 그런걸 자세하게 우리들에게 말해줘도 되는 거에요?”

고보시가 물었다.

“... 비밀만 지켜 준다면.”

시로는 잠시 고민하더니 짧게 대답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읏차. 그건 그거고 이제 집으로 돌아 가야 겠다.”

다카시가 일어나며 말했다. 모두 다카시를 바라보았다.

“놀라고 있는다고 달라질 건 없잖아. 미샤누나가 천사라느니 시아누나하고 타로형하고 시로씨에 저기 있는 리드라는 강아지가 악마라느니 다른 천사들이 미샤누나를 노린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놀랍긴 하지만 결국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잖아.”

다카시가 말하자 타쿠가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냥 평소처럼 대하면 되는거죠?”

이젠 모두들 다 일어났다.

“아~ 히로시 오라버니 때문에 너무 늦었잖아. 미인은 일찍 자야 되는데.”

카오루의 불평.

“그럼 가 볼께요.”

“내일 또 올테니까 도시락 부탁해요.”

“학교에서 봐요.”

타츠키와 고보시, 그리고 타쿠가 말했다. 모두들 평소와 다름없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쳇, 오늘은 미샤씨의 말 때문에 그냥 넘어가지만 함부로 미샤씨를 대하면 모두 봉인해 버릴 테다!”

히로시의 외침도 평상시와 똑같다. 모두들 문 앞에 섰다.

“안녕히 계세요.”

모두들 동시에 말했다. 시아와 타로, 미샤와 고타로우는 잠시 동안 그들을 바라보다가,

“내일 또 봐.”

하며 평상시처럼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었다.


“제기랄!”

어느 숲 속에 천사들은 모두 모여 있었다. 칸쿄는 나무에 서 있는 나무를 쎄게 때렸다. 나무가 움푹 패인다.

“하아....... 자연물은 소중히 여기라구.”

아까 신에에게 한방 먹은 천사가 한숨을 쉬더니 나무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 놓았다.

“그런 한가한 말이 나오냐! 도대체 왜 거기서 시간을 끈 건데!”

“말 했잖아!”

“재밌는 구경거리 말야? 천하의 르니님께서 한낱 구경거리 때문에 일을 망치시다니요. 히로시라는 놈이 그 호위악마놈을 끌어낸 좋은 찬스를 이용해서 그냥 일에 집중하셔야지 뭐하셨던 겁니까.”

칸쿄가 약올리는 말투로 말했다. 르니라고 불린 천사는 뜨끔한지 고개를 숙여버린다. 칸쿄의 일에 집중하는 성격을 알기 때문에 칸쿄에게 신호를 늦게 보낸게 이렇게 된 것이다.

“쳇, 그 리든가 뭔가 하는 똥개만 아니었으면.......”

르니는 궁색한 변명을 한다. 애초에 구경한 것은 자신들이기에 그런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리드라는 이름이 나온 그 순간, 칸쿄의 얼굴이 일순 멈추었다.

“리드....... 라고?”

“그래, 왜?”

“설마 마견신인가?”

칸쿄는 이제 몸을 떨기 시작했다.

“맞아, 아는 놈이야?”

르니의 질문에 칸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을 그대로 멈춰 있던 칸쿄는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우히히히....... 그래, 리드. 너 거기 있었구나.”

“어이, 칸쿄?”

“우하하하하하........ 난 여기 있다구. 너도 나 많이 기다렸지?”

“야! 너 무슨 혼잣말이야!”

“그래 그래, 오랜만에 만났으니 천천히 준비해야 겠구나. 옛날 추억도 되새길 수 있도록 말이야. 기대되는 구나. 100년만의 재회라니. 흐흐흐흐......... 아하하하하하하........”

“어이! 정신차려!”

모두들 칸쿄를 무서워하는 눈빛으로 말리려 했다. 칸쿄의 외모와 비교하면 웃고있는 칸쿄는 영락없이 마왕이었으니까. 하지만, 칸쿄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달빛이여. 그리고 별빛이여.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어둠의 빛이여. 죄악에 물든 나를 비추어 주소서. 나에게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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