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2편: 천계의 위협, 마계의 의지

by S시로T*^^* posted Jun 1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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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샤누나!”

고타로우가 소리쳤다. 날개가 살짝 움직이더니 미샤가 눈을 떴다. 그리고 고타
로우 쪽을 천천히 쳐다 보았다.

“고......타......로우?”

말하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거칠게 숨을 쉬면서 고타로우를 부르더니 고타로우의 팔을 잡았다.

“다행......이다. 진짜...고타로우야...... 드디어......”

미소를 지으며 기쁜 듯 말하던 미샤는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눈을 감았다. 뒤에 달린 날개가 반짝이더니 수많은 새하얀 깃털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리저리 흩날리던 깃털들은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사라졌다.

“미샤누나! 안돼, 정신 차려봐!”

고타로우가 미샤의 몸을 흔들며 불러 보았지만 미샤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고타로우는 미샤를 안고 달리기 시작했다.

‘시로에게 가면 무언가 방법이 있을 거야.’

아까보다 더 빨리 달리기 시작했지만, 집까지의 거리는 더 멀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고타로우는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미샤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상황의 긴박함은 고타로우의 옷에 조금씩 스미는 붉은 피로 알 수 있었다. 그 붉은 피는 고타로우를 더욱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런 고타로우를 지켜 보며 누군가 하늘을 날며 따라오고 있었다. 하얀 날개가 달린 것으로 보아, 천사였다.
아파트에 도착했다. 그 걸음으로 달려가서 시아네 집으로 들어갔다.

“시로! 있어요!? 어디 있어요?!”

고타로우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외쳤다. 모두 놀란 표정으로 고타로우와 미샤를 보았다.

“미샤씨!”

시아가 소리치며 달려왔다. 시로와 타로도 달려왔다. 시아를 눕힌 고타로우는 사로를 향해 몸을 돌렸다.

“미샤 누나....... 어떻게 해야 살릴 수 있죠?”

“몰라.”

“방법이 있을 거 아녜요! 빨리 어떻게든 해야....... 안 그럼 진짜로 죽을 수도.......”

“난 악마다. 그런 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천사를 살리는 방법을 알 리가 없지.”

“그럴 수가......”

시로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고타로우는 다시 미샤에게 다가가 미샤를 끌어 안았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다.

“미샤누나. 안돼, 눈을 좀 떠봐.”

잠시 미샤를 바라보던 시로가 시아와 타로에게 말했다.

“타로, 가서 구급상자 좀 꺼내와라. 시아, 응급조치는 할 수 있겠지?”

“네.”

“알겠어.”

타로가 서둘러 구급상자를 찾아왔다. 그리고 시아가 천천히 미샤의 상처부분을 붕대로 감아 주었다. 고타로우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 감아주자 시로가 입을 열었다.

“....... 큰 기대는 하지 마라. 단순한 외상이라면 인간과 그 치료법이 다르지 않겠지만, 큰 내상은 얘기가 달라지니까.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마 천사뿐일 거다.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다만 이렇게라도 해 주는 것 뿐. 남은 건 이제 이 천사에게.......”

그 때, 미샤의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모두 깜짝 놀랐다. 빛이 점점 밝아지더니 결국 미샤의 몸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빛이 사라지고 나타난 미샤는 깨끗하게 나아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잠시 생각하던 시로는 무언가 느낀 듯 창문 쪽을 경계했다. 모두 창문을 바라 보았다. 그곳에는 샤샤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샤샤!” 고타로우가 소리쳤다.

“맞아, 천사를 치료할 수 있는 건 천사 뿐. 천사의 힘이 없다면 심한 상처는 치료해 줄 수 없지. 근본적으로 세 종족은 다르니까.”

샤샤가 들어오자 모두 긴장했다. 고타로우는 샤샤와 미샤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같은 천사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샤샤를 미샤 가까이에 다가가게 하면 안될 것 같아서였다.

"위-잉."

시로는 언제라도 샤샤를 공격할 듯이 손에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검은색 빛으로 만들어진 듯한 공은 비록 크기는 작았지만 태양처럼 홍염같은 것이 표면에서 끓어 오르는 듯 해서 상당히 위험해 보였다. 그런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샤샤는 갑자기 화가 난 목소리로 모두에게 소리쳤다.

“이게 다 너희들 때문이야! 너희들만 없었다면 미샤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구! 덕택에 이제 미샤는 천계로 돌아오면 살 수 없어! 죽는다고!”

화가난 샤샤의 말을 듣고 모두 놀랐다. 샤샤의 말이 사실이라면, 미샤는 지금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고타로우는 미샤를 보았다. 상처는 다 나았지만 아직 깨어나지는 못했다.

“....... 여기 온 목적은 단지 미샤를 치료해 주는 것 뿐....... 미샤는 아마 한참 후면 깨어날 거야.”

말을 마치자 샤샤의 몸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잠깐 기다.......”

고타로우가 붙잡으려고 했으나, 이미 샤샤는 그 자리에 없었다. 잠시 모두 가만히 서 있었다.
노을도 사라지고 까만 밤이 되었다. 그날따라 하늘에 달도, 별도 보이지 않았다. 타로가 이불을 깔고 미샤를 눕혀주었다. 그리고 모두 미샤의 주위에 앉았다.

“나 때문일거야.......”

고타로우가 무거운 입을 열어 침묵을 깼다. 모두 고타로우를 쳐다 보았다.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야. 나 때문이야. 내가, 미샤누나가 함께라면 더 행복할 거라고 인정해 버
려서 다시 천사로서 자격을 잃어버린 걸 거야.”

시아가 말하려고 하자 고타로우가 가로막으며 말했다. 다시 모두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고타로우는 좀 더 미샤 가까이에 다가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미샤누나, 미안해....... 나 때문에.......”

모두 그런 고타로우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쳐다 보았다. 눈물이 빗물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때였다.

‘톡’

눈물 중 하나가 떨어지자 그 주위를 중심으로 집 안이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모두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 깜짝 놀랐다. 그 때, 시로가 말했다.

“이유도 모르고 내 앞에서 누군가 우는 것은 질색이야. 네 눈물을 매개체로 미샤라는 아이의 기억에 통로를 만든 거다. 지난번 미샤가 타로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 것과 비슷하지만 미샤가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 기억도 때에 따라선 볼 수 있을 거다. 아마 왜 미샤가 여기에 왔는지도.......윽!”

말하는 도중에 시로는 갑자기 괴로운 듯 쓰러졌다. 시아와 사로도 쓰러졌다. 고타로우는 깜짝 놀랐다.

“헉, 헉. 그리 놀랄 건 없다. 미샤가 허락하는 자는 고타로우 너 뿐이라는 뜻이니까. 비록 힘이 약해진 천사라 해도 허락 없이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은 무리란 얘기인가.......”

시로가 헉헉거리며 말을 마치자 시로와 시아, 그리고 타로가 차례로 사라졌다. 그리고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주위가 밝아졌다.

“미샤 누나....... 미샤누나, 아주 조금이지만....... 보였어....... 새하얀....... 천사가 된 미샤누나가....... 축하해.......축하해, 미샤누나.......”

어디선가 자신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고타로우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미샤와 헤어진 날인 것 같았다. 눈 내리는 하늘, 하지만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음에도 이상하게 주위가 밝은 그날은 고타로우의 마음에서 잊혀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서인지 낯익은 느낌이 강했다. 다만, 그날과 좀 다른 것은 고타로우의 앞에 있는 미샤누나가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때 잠깐 스쳐본 것처럼, 온몸이 새하얀 천사로 변해 있었다.

“고마워, 고타로우....... 기뻐, 천사가 된 내 모습을 보아주어서....... 행복해야 해.”

비록 만지지는 못하지만, 미샤누나는 기억 속 고타로우를 안으며 같이 눈물을 흘렸다. 그때, 어디선가 샤샤가 갑자기 날아왔다.

“성공했구나 미샤! 아주 잘했어!”

“고마워 샤샤언니.”

샤샤가 축하해 주자 미샤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자, 이제 미샤! 집으로 돌아가야지!”

샤샤가 기쁜 듯 미샤를 끌어당겼다. 하지만, 미샤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보이지 않는 미샤쪽을 자꾸 바라보며 걸어가는 고타로우를 보고 가지 않으려고 했다.

“왜 그래, 미샤?”

“샤샤언니, 내일까지만 출발을 늦춰줘. 내일이 고타로우의 졸업식이야. 마지막
으로 축복을 해 주고 떠나고 싶어.”

“너 정말....... 어쩔 수 없구나. 좋아, 알겠어.”

“고마워, 언니!”

샤샤가 부탁을 들어주자 미샤는 매우 기뻐했다. 그리곤 다시 밝아졌다.
다시 선명해 졌을 때 보이는 곳은 졸업식을 끝낸 학교였다. 기억 속의 고타로우가 학교를 걸어 나오고 있었고 뒤따라 미샤가 따라오고 있었다. 샤샤는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돌아간 듯 싶었다.

“고타로우!”

다카시와 고보시가 소리치며 달려왔다.

“하아....... 졸업식이 다 끝났구나.”

“영 실감이 안난다.”

“그래.......다들 진로도 정해지고.......”

“진로 얘기는 하지마앗-!”

기억 속 고타로우와 다카시와 고보시가 모여서 이야기하자 히로시가 달려들면서 소리쳤다.

“히로시.......”

“안됬구나.......국립.”

다카시가 안됬다는 표정으로 히로시의 이름을 말하자 고타로우가 옆에서 덧붙였다.

“말하지 마앗!”

히로시가 화를 내면서 말했다. 서로 모여서 이야기하는 모두의 모습들을 미샤는 말 없이 미소지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야!”

“고타로우! 가자.”

“고타로우!”

“너 두고 간다, 고타로우!”

모두가 고타로우를 부르자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던 고타로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 때, 미샤가 고타로우의 등을 가볍게 밀어 주었다. 고타로우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고타로우는 미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힘내.’

“야, 왜 그래?”

“빨리 와.”

다카시와 고보시가 고타로우를 불렀다.

‘이제 앞으로 걸어 가야지. 계속 멈춰 있을 순 없잖아.’

미샤가 고타로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하지만, 역시 들릴 리가 없었다.

“응...가자!”

고타로우가 외치며 달려갔다. 그런 고타로우를 잠시 지켜보던 미샤는 하얀 눈송이같은 무언가를 고타로우를 향해 뿌려주었다.

“고타로우에게 앞으로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미샤는 가만히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그때, 하늘에서 샤샤가 갑자
기 날아왔다.

“미샤, 이제 그만 가자.”

“응.”

샤샤가 천천히 하늘로 날아가자 미샤는 따라가다가 저 멀리 걸어가는 모두를
보았다.

“잘있어....... 모두들.......”

샤샤와 미샤의 모습이 사라지고, 다시 눈 앞이 밝아졌다.

“....... 악마는 세상 구석의 혼돈의 땅에서 온 이단자로서, 항상 인간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악하게 만들어 불행하도록 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천사는,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악마를 경계하고 인간에게서 떨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럼,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는 악마는요?”

미샤가 수업을 받는 곳 같았다. 하지만 학교는 아니었다. 미샤와 선생님 같은 천사 단 둘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과외같은 것을 받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마치 전사같이 덩치가 크고 위엄있게 생겼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빛은 너무 많아 뜨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적어 어둡지도 않게 알맞았다. 그 알맞은 햇빛을 받아서인지 주위에는 신기하게 생긴 나무가 여러 그루 자라 있었다. 잎사귀 여러군데에 예쁜 보석 같은 결정이 빛나는 아름다운 나무였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건물들은 마치 옛날 그리스 신화같은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신전 같았다. 멀리서도 그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그 건물들은 여기저기 모여 있어 신성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살살 불어왔다. 간간히 달콤한 향기가 같이 따라오는 바람이었다. 바람을 따라 나무의 잎사귀가 흔들리자 어디선가 들려오는 처음 들어보는 아름다운 새 소리와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음악이 되었다. 고타로우는 기분이 상당히 좋아졌다.

“샤샤양이 말한 대로군. 아직 이 세상에 대해 잘 모르는 아이야. 그런 악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악마는 가이아 님께서 창조하신 인간계, 더 나아가 천계의 멸망을 추구하는 존재다. 그들은 비록 옆에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지 몰라도 존재 자체에서 나오는 마력만으로 인간계 어딘가에 살아있는 인간의 마음을 악하게 만드는 무서운 존재다. 거기다가, 인간이 너무 선하여 우리의 힘이 강해지면, 그들은 우리의 손에 멸망할 것이기 때문에 악마는 인간을 더욱 악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너는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데다가, 풀려나자마자 인간계로 가서 잘 모르는 게 당연하지. 이해하마. 하지만 샤샤에게 듣기로는 네가 지금 생각하는 듯 한 시아라는 악마도 고타로우라는 인간아이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했다고 하던데....... 오랫동안 같이 있었으니 정이 붙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것이 진실이다.”

“.......알겠습니다.” 미샤는 대답은 했지만, 수긍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고타로우도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아를 생각하고 있었다. 시아는 절대 다른 인간을 악하게 만드려고 하는 악마가 아니었다. 비록 고타로우의 생명을 가져가기는 했지만, 죽이려고 하지도 않았다. 다만, 시아의 생명이 위험해 져서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다. 미샤도 같은 생각을 하는지 수업하는 내내 고민하고 있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선생님, 악마는 어떻게 태어났나요?”

수업이 끝나자, 미샤가 일어나며 물어 보았다. 불어오던 바람이 갑자기 멈추었다. 주위에 들리던 새소리, 잎사귀 소리도 모두 사라졌다. 기분나쁠 정도로 주위가 조용해졌다.

“.......우리와 근본이 다른 또 하나의 존재. 따라서, 가이아의 손에서 창조된 자들이 아닌 혼돈의 땅에서 스스로 태어난 또 다른 존재다. 항상 평화를 사랑하는 창조주 가이아의 뜻을 방해하는 자들이지. 더 이상 아려는 것은 가이아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니 알아보려고 달려들지 마라. 네 목숨이 위험해질 것이다.”

잠깐, 선생님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 것 같았다. 고타로우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자, 표정은 그대로였다. 잘못 본 것 같았다.

“네,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고 나서 미샤는 어디론가로 날아갔다. 그 때, 갑자기 커다란 날개를
가진 천사가 선생님 옆에 나타났다.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지만, 시로와 같은 인상을 풍기는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입은 옷은 흰색 천에 금색 실로 어디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게 수를 놓았다. 그녀의 날개는 선생님의 날개보다 두배는 더 커 보였다.

“글레어, 어떤가요?”

선생님의 이름이 글레어인 듯싶었다. 글레어는 순간 움찔 하더니 금세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다.

“.......위험한 아이입니다, 마스터. 저 아이가 앞으로 악마의 근원을 조사하려
든다면, 잔인하지만 그 법에 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목숨이 위험하다고 말하시지 않았습니까.......?”

“말은 했습니다만, 호기심이 워낙 강합니다. 임시방편은 되겠지만, 얼마 지나
지 않아 결국 찾으려고 달려들 겁니다. 거기다가 과거에 악마의 근원에 관해서 쓴 책들은 아직 완전히 소멸 된 게 아닙니다. 그리고 발견되지 않은 책들 중에는 세상의 멸망을 바라는 한 악마가 써서 숨겨놓은 책도 있다는 설도 있습니다. 조사하려고 달려든다면....... 위험할 겁니다.”

“그럼....... 어떻게든 손을 써야 겠군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미샤의 힘으로 간신히 봉인한 고타로우라는 인간아이의
힘이......."

'뭐?'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최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미샤를 막는 일이니까
요."

무언가 벌어질 듯한 분위기였다. 고타로우는 순간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를 더 들으려고 했으나, 다시 앞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잠깐만.......”

다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다음으로 보이는 곳은 어느 도서관같은 곳이었다. 천장도, 바닥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빽빽하게 책이 꽃여 있었다.

“으앗.”

고타로우는 깜짝 놀랐다. 고타로우의 몸이 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떨어지지는 않았다. 몸은 떠 다녔지만, 느낌은 마치 바닥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저쪽에서 미샤가 어떤 책을 읽고 있었다. 주위의 색이 바래진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오래 된 책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았는지, 낡은 흔적이 없었다. 책에는 ‘저주받은 자.’ 라는 제목이 금빛으로 흐릿하게 새겨져 있었다. 고타로우는 다가가서 같이 읽었다.

[{세상은 카오스에서 태어난 가이아 여신의 손에서 창조되었다. 그녀는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천사, 악마, 인간을 만들어 세 종족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도록 각자의 일을 주었다. 그런데 악마의 필두인 나카토의 힘이 강해지자, 악마는 나카토를 중심으로 가이아를 배신하여 혼돈의 땅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들의 힘은 나머지 두 종족을 위협하였으며, 가이아의 힘을 넘볼 정도로 강해졌다. 그러자 가이아는 그들의 힘과 함께 자신을 봉인하였고, 그 뒤 지금과 같은 세상이 되었다.}]

글레어가 가르쳐 준 내용과 다른 얘기였다. 가이아의 손이 아닌 스스로 태어난 또 다른 존재라는 이야기와는 조금 차이가 있는 이야기....... 고타로우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우냥, 어느게 진짜지?”

미샤는 책을 덮고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머릿속이 복잡한 것 같았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여러가지로 생각하다가 결국 포기한 듯이 책꽂이에 살짝 기댔다. 그 때, 멀리서 다른 천사가 날아왔다.

“미샤 양, 지금 바로 맨 꼭대기 층으로 가 주세요. 샤샤가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아, 그리고 그 책은 제게 맡겨 주시지 않겠습니까?”

“네.”

미샤는 자신을 찾으러 온 천사에게 책을 건네주고 올라갔다. 미샤가 올라가자, 책을 받은 천사는 책을 불태워 버렸다.

"미안......."

“뭐....... 우왓!”

책을 불태우고 미안하다고 하는 그 천사의 모습을 본 고타로우는 깜짝 놀라 더 들으려고 했으나 미샤가 어느정도 멀리 날아 올라가자, 고타로우의 몸도 저절로 올라갔다. 그리고, 고타로우의 뒤를 천사 세명이 같이 따라 올라왔다. 모두 표정이 비장해 보였다.
계속 올라가자, 커다란 문이 천장을 향해 나 있었다. 아름답게 빛나는 그 문은 딱딱한 무언가로 만들어졌다기 보다는 빛으로 만들어 진 것 같았다. 미샤는 그 문을 향해 계속 올라갔고, 속도를 낮추지 않고 그 문과 부딫쳤다. 그러자 문이 마치 연못처럼 흔들렸고 미샤는 물 속에 들어가듯 문 속으로 사라졌다. 뒤따라서 고타로우도 들어갔다.
들어간 곳은 가구하나 없는 텅 빈 커다란 방이었다. 벽에는 커다란 창문이 붙어 있었고. 문은 아까와 달리 바닥 가운데 조그맣게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글레어에게 마스터라고 불렸던 커다란 날개를 가진 천사가 서 있었다.

“미샤 양, 언젠가 한번 이렇게 단 둘이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고타로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에는 미샤와 마스터라고 불려진 천사 단 둘 뿐이었다. 고타로우는 순간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누구시죠? 샤샤언니는요?”

“샤샤는 급한 일이 생겨서 잠시 저에게 자리를 맡기고 가셨습니다. 금방 돌아오
실 테니 여기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시더군요. 아, 소개가 늦었군요. 제 이름은
세라프입니다.”

자신을 세라프라고 소개한 천사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표정은 차
가웠다. 아니, 오히려 더 섬뜩해졌다.

“....... 악마의 근원을 찾는 일은....... 잘 되고 있습니까?”

세라프가 말했다. 미샤의 눈이 커졌다.

“악마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고 계세요? 도와주세요. 선생님이 말해 주신 것과 책하고의 내용이 달라요. 어느게 진짜인지 모르겠어요.”

“그렇습니까......? 유감입니다.”

촤악!

세라프가 허공으로 손을 휘두르자 무언가 빛나는 실같은 것이 미샤에게 날아가더니 마치 칼에 베인 듯한 깊은 상처를 냈다. 미샤는 창문쪽으로 날아갔다. 몸에서 심하게 피가 났다.

“미샤누나!”

고타로우가 뛰어갔다. 미샤는 상처를 입은 채로 겁을 먹어 세라프를 보며 심하게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미샤를 표정의 변화도 없이 바라보던 세라프는 미샤에게 다가갔다.

“멈춰!”

고타로우가 양 팔을 벌리고 막으려고 했지만, 세라프는 고타로우를 그대로 통과해 버렸다. 그리고 다시 미샤를 공격했다.

“꺄-악!”

미샤는 더 큰 상처를 입고 반대편에 부딫쳤다.

“....... 악마의 근원은 악마밖에 모릅니다. 인간도, 천사도 그 사실을 모르는 데다가 알아서도 안됩니다. 악마의 근원을 아는 천사가 단 한명이라도 생기면 천계는 가이아님의 손에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천계의 멸망은 마계의 승리, 인간계는 타락하고 말겠죠.”

세라프는 천천히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어떠한 뜻이 있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이아는 천사를 무한히 사랑하시고 악마를 증오하시는 천사의 질서. 만약 그런 가이아님께서 그 이유가 무엇이든 자신의 뜻을 거역하면 징벌이 아닌 천계를, 더 나아가 인간계를 멸망시키고 악마의 편을 들겠다고 맹세하셨다는 게 다른 천사들에게 밝혀진다면 천계의 질서가 상당히 무너질 겁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 누구에게도 밝혀지지 않은 채 저와 같은 고위층 대천사들에게만 전해져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법을 만들었죠. 악마의 근원을 알려고 하는 자가 있다면....... 그 존재를 멸하기로.”

“뭐?”

세라프가 말하자 고타로우는 깜짝 놀랐다. 미샤도 놀란 듯 했지만, 너무 아파서 표가 많이 나지 않았다. 헉헉거리며 계속 세라프를 쳐다보았다.

“....... 유감이지만, 당신은 예전에 한 인간을 죽음으로 몰았다는 죄가 있습니다. 결국 그 인간의 환생을 행복하게 해 주었지만....... 이 사실을 전해드리고 말리기에는 당신은 상당히 신용을 잃은 상태입니다. 미리 경고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눈에 많이 띄는 당신이 악마의 근원을 조사한다는 사실은 이미 다른 천사들에게 알려지기까지 했죠. 더 이상 숨길 수도 없는 상황에 왔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멸하는 일은 고위층 대천사 사이에서 최종적으로 투표되어 결정된 일입니다. 만장일치였죠....... 정말 괴롭지만 결국 제가 당신을 없애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아직 견습천사였다면 고통없이 끝낼 수 있었겠지만 정식 천사가 된 당신을 조용히 사라지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죄송하지만, 안녕히 가십시오.”

또 다시 세라프가 공격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샤가 재빨리 피했다. 뒤에 있던 벽이 갈라졌다.

“도망쳐! 미샤누나!”

고타로우가 소리치자 미샤는 마치 고타로우의 목소리를 들은 듯이 방바닥의 문으로 들어갔다. 고타로우도 따라서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문 밖에는 아까 따라오던 세명의 천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미샤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미샤를 공격했다.

“읏, 그냥 날 보내줘!”

미샤는 가날프지만, 최대한 크게 소리치며 도망쳤다. 고타로우는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으나, 모든 공격은 고타로우의 몸을 그냥 통과하여 미샤에게로 날아가기만 했다. 고타로우는 죽고 싶었다. 이렇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바에는....... 그 때, 어디선가 미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죽어선 안돼. 내가 사라져버리면 고타로우가 또다시 불행해 진단 말이야....... 반드시 살아서 돌아갈거야.’

그리고 다시 눈 앞이 밝아졌다.


“헉!”

고타로우는 떴다. 미샤 옆에 누워 있었다. 일어나자 악몽을 꾼 것 같이 온 몸이 떨렸다.

“거봐! 걱정할 거 없다니까.”

시로가 화가 난 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고타로우가 괴로워하자 옆에서 타로와 시아가 많이 걱정한 것 같았다. 땀을 닦아 주었는지 시아의 손에는 수건이 들려 있었다.

“괜찮아요?”

“응, 괜찮아.”

시아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말하자 고타로우가 대답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 때, 미샤의 손이 살짝 움직였다. 고타로우는 깜짝 놀라 눈을 떠서 미샤의 얼굴을 보았다. 천천히, 미샤의 눈이 떠졌다.

“고타.......로우?”

“미샤누나!”

잠시 동안 둘다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미샤가 고타로우를 끌어 안았다. 고타로우는 뒤로 넘어졌다.

“고타로우.......고타로우....... 정말 보고 싶었어.......”

“미샤누나는 바보야!”

고타로우는 갑자기 미샤를 뿌리쳤다. 그리고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다. 그런 고타로우를 모두 놀란 표정으로 쳐다 보았다.

“맨날 쓸데없이 하지 말라는 행동이나 하고. 이번엔 미샤누나 정말 죽을 뻔했잖아....... 미샤누나가 정말로 사라져버리면 난.......난.......”

고타로우는 마지막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로 눈물을 흘렸다. 미샤가 다가가서 고타로우를 살짝 안았다.

“미안해....... 고타로우.......”

고타로우가 울자 미샤도 같이 울기 시작했다. 서로 안고 한참동안 그렇게 울었다.

“이제 그만 좀 하지 그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무사히 돌아
온 것 같고.......”

“냅둬. 보기 좋잖아. 냐옹아.”

“너 정말!”

시로가 핀잔을 주자 고타로우와 미샤는 울음을 멈추었다. 고타로우는 서둘러 미샤를 떼고 좀 떨어졌다. 얼굴이 새빨개졌다.

“어? 잠깐만, 저 악마는.......”

“괜찮아요, 미샤씨. 나쁜 분은 아니에요.”

미샤가 깜짝 놀라 시로를 가리키자 시아가 안심시키며 말했다.

“....... 크라우스 로젠버그, 시로라고도 하니 시로라고 불러라. 아무래도 앞으로 같이 생활해야 될 것 같으니 잘 부탁한다.......”

“미샤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릴께요.”

“그냥 편한 대로 냐옹이라고 불러.”

“입 다물어! 주책바가지야!”

“뭐야!”

서로 또 다투기 시작했다.

“어? 근데, 고타로우가 어떻게 내 일을 알고 있지?”

시로와 타로는 잠시 싸우는 것을 멈추었다. 시로는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허락한 게 아니었나?”

“어라? 그게 무슨 말.......?”

미샤가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반문하자 시로는 살짝 한숨을 쉬더니 다시 말했다.

“.......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아마 고타로우는 뭐든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겠지.”

“우우, 뜨겁구만.”

시로가 말하자 미샤와 시아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듯 했다. 하지만, 타로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미샤와 고타로우를 놀렸다. 그러자 고타로우는 얼굴이 또 빨개졌다.
그 때,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었다. 모두 눈을 뜰 수 없었다. 바람이 그치고 눈을 떴을 때,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사로 앞에 서 있었다. 시로는 당황하지 않고 그 남자를 쳐다 보았다.

“무슨 일이지?”

“급히 마계로 돌아오라는 나카토님의 명령이 계셨습니다. 마계의 고위 간부의 자격으로.”

남자는 악마인 듯 했다. 시로는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역시 그런가....... 알겠다.......”

“이곳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과 제가 가는 동안, 주위는 다른 악마들이 수호할 겁니다.”

“그런가. 고타로우, 미샤. 아무래도 우리들은 마계로 잠시 갔다 와야 될 것 같다. 돌아올 때까지 밖으로 될 수 있는 한 움직이지 말아라.”

시로가 말을 마치자 시로의 등 뒤에 검은 날개가 생겼다. 시아와, 타로, 그리고 시로와 시로를 데리러 온 악마가 사라졌다. 잠시, 주위가 조용했다.

“미샤누나. 정말, 보고싶었어. 이제 더 이상 너무 매달리지는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너무 보고 싶었어.”

서로 아무말 없이 쳐다보기만 하던 미샤와 고타로우 사이의 침묵을 깨고 고타로우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근데 고타로우. 키가 또 많이 컸네. 마지막으로 안았을 때보다.”

고타로우가 말하자 미샤가 고타로우를 꼭 껴안고 말했다. 고타로우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중학생이니까.......”

"얼마나 컸는지.......정말 그동안 많이 궁금했어................."

갑자기, 미샤의 무게가 좀 더 실리는 듯 했다. 고타로우는 미샤 쪽을 보았다. 눈을 감고 있었다.

“미샤누나......?”

“음냐....... 고타로우.......”

깜짝 놀라 조그맣고 떨리는 목소리로 미샤를 불렀던 고타로우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단순히 피곤해서 잠든 듯 했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심한 상처를 방금 회복한 미샤를 깨우고 싶지는 않았다. 천천히, 고타로우는 미샤를
편안하게 눕혀주었다.

한편, 미샤와 고타로우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 시로 일행은 인간에게 보이지 않도록 몸을 투명하게 감추고 데리러 온 악마의 안내를 받아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한쪽은 어두운 빛이, 다른 한쪽은 밝은 빛이 비추어 주어 가운데 선이 그어져 있고 각 부분에 문이 하나씩 달려 있는 이상한 집이었다. 각 빛은 마치 다른 빛을 잡아 먹을 듯이 공격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런 모습은 그 집의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었지만, 마치 이 이상한 집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시로들은 어두운 빛이 비추어 주는 쪽 문으로 들어갔다.
집 안도 어두운 빛과 밝은 빛이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바깥보다 서로를 공격하고 있는 듯 하다는 느낌이 더 심했다. 그 경계는 바닥에 놓여 있는 커다란 둥근 탁자를 반으로 나누었다. 탁자는 한 자리를 빼고 이미 자리가 차 있었다. 시로의 자리인 듯 했다. 어두운 빛에는 악마, 밝은 빛에는 천사가 앉아 있었고, 각 구역의 가운데 놓여 있는 커다란 의자에는 어두운 쪽은 한 남자가, 밝은 쪽은 세라프가 앉아 있었다. 남은 자리는 사로의 자리인 듯 싶었다. 악마쪽에 중앙에 앉은 자는 머리가 은발로 빛나고 있었고,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더 자세히는 볼 수 없었다. 시로가 앉자, 시아와 타로는 그 뒤에 섰다.

"....... 다 모였으니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우리는 이미 거기 있는 시로
라는 자가 천계의 죄인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천사에게서 보고받았다. 우리의 요구는 이것 하나뿐이다. 바로 그 천사의 송환이다."

가장 오른쪽에 앉아 있는 천사가 입을 열었다. 시아와 타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다른 악마들은 표정의 변화가 없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무런 말도 없자, 이번에는 왼쪽에서 두번째로 앉은 천사가 말을 시작했다. 미샤를 가르쳤던 글레어였다.

"미샤는 내가 가르쳤던 학생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가이아님의 뜻을 거역한 천사다. 비록 마음은 아프지만 우리는 가이아님의 뜻에 따라 미샤를 처벌해야만 한다. 그 처벌은 천계의 일이며 마계가 이에 간섭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 쯤은 알고 있지 않은가."

글레어의 말이 끝났다. 그러자 악마쪽 중앙에 앉았던 우두머리인 듯한 악마가 일어섰다. 눈매가 상당히 날카로웠으나, 어딘지 모르는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천사들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상당히 굳은 표정이었고, 그 표정에는 비장함도 서려 있었다. 그 악마가 일어서자 주위에 있던 악마들도 모두 일어났다.

"우리가 이 곳에 모두 모이기 전에, 이미 모두의 의견은 하나로 모아져 있었다. 만장일치로......."

중앙에 앉았던 악마가 말하자 천사쪽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 때, 가만히 듣고 있던 세라프가 말했다.

"그 결론은 무엇입니까. 마계의 왕, 나카토."

모두 잠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나카토라는 마계의 왕의 대답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나카토는 잠시 주위의 다른 악마들의 얼굴을 보았다. 눈으로 이야기한 듯,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나카토가 말을 하려고 하자, 시아와 타로의 긴장은 더해졌다.

"미샤라는 천사의....... 보호다."

천사쪽은 아까보다 더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곁에서 숨도 간신히 쉴 수 있을 정도로 긴장해 있던 시아와 타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때, 세라프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나카토를 향해 공격했다. 하지만, 그 공격은 경계에서 모래알처럼 흩어지더니 사라졌다. 경계의 흔들림이 심해졌다.

"....... 이곳은 휴전 협정 이후 천계와 마계의 협의장소로 만들어 진 곳, 서로의 공격은 모두 금지되어 있지 않았던가?"

나카토가 말했으나, 천사쪽은 당장이라도 이곳에서 전쟁을 벌일 것만 같았다. 모두 상당히 화가 나 있는 표정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정말 더럽군요. 여전히 가이아님의 뜻을 거역하고 무책임하게 행동할 것입니까?"

"나는 마계의 왕. 가이아의 뜻을 거역하고 가이아가 창조한 세상의 혼란을 추구하는 자. 그리고 나와 뜻이 같든 같지 않든 가이아를 배반한 다른 자들을 보호하고 다스릴 의무가 있는 자다. 설령 배반한 자가 천사라 할 지라도, 그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마계의 이름을 걸고 말하는데 절대 '악마의 근원'에 대해서 말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세라프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비난하자, 나카토가 되받아쳤다.

"....... 좋습니다. 마계의 왕이라 하더라도 그 더러운 피는 어찌 할 수 없나 보군요. 하지만 우리가 그냥 방관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마십시요. 우리는 당신과 반대로 가이아님의 뜻을 절대적으로 따르며 이세상의 질서를 추구하는 자입니다.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미샤의 존재를 없애버리겠습니다."

잠시 아무말 없이 무언가 생각하던 세라프가 대답했다. 말투는 변하지 않았으나, 눈에는 살기가 잔뜩 어렸다. 그 모습을 보자, 시아와 타로는 두려움에 움찔했다. 세라프가 그쪽을 보자, 시로가 그 둘을 가렸다.

"한명은 진짜 악마지만 이미 살아있는 존재는 아니군요. 다른 한명은 악마의 꼬임에 넘어간 한심한 인간이고....... 둘 다 더러운 피를 먹고 사는 노예입니까.......?"

"닥쳐라!"

세라프가 잔인하게 웃으며 말하자 시로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 용기는 칭찬해 드리죠. 아무리 경계가 사이를 가로막고 있어도 천사중에도 사대천사의 자리를 담당하고 있는 저에게 큰소리를 치실 수 있는 악마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역시, 천계에서도 악명높은 시로답군요. 거기다 그쪽 둘도....... 동족간의 사랑이 정말 눈뜨고는 못 볼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비꼬듯 말하던 세라프는 다른 천사들과 함께 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차례로 사라졌다.

"....... 미안하군. 세라프 저 녀석은 아직 어린아이 티를 벗지 못해서 화가나면 누군가에게 화풀이 하지 않으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성격이거든....... 불똥을 튀기게 해서 미안하다."

"아닙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나카토가 사과하자 타로가 대답했다. 하지만 시아는 아직 두려움을 벗어나지 못해서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타로가 시아의 손을 잡아주자 조금 나아지는 듯 했다.

"시로, 이제 그만 돌아가라. 그리고 시아를 좀 쉬게 해 주어라.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 충격을 많이 받은 모양이다. 그리고 미샤의 보호는 네게 맡기겠다. 수련을 마친 네 힘으로는 왠만한 천계의 공격은 너 혼자서도 막을 수 있겠지만, 혹시 힘에 부치면 얼마든지 지원을 요청해도 좋다."

"절대, 지원을 요청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겁니다."

시로가 반항적인 말투로 말하고 타로와 시아를 데리고 몸을 보이지 않게 한 다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나서 사라졌다. 마치, 마왕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았다.

"....... 억울하겠지만, 모두 참아다오. 아마 세라프는 우리가 미샤에게 악마의 근원을 알려 주어 천계를 멸망시킬 거라는 불안감에 평소보다 더 급했던 모양이다. 마계의 멸망까지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채로....... 어쨌든 우리는 천사에게는 '세상의 멸망을 추구하는 자'로서 최대한 '천사와 악마의 결합'을 막아야 되니까."

"괜찮습니다."

"....... 고맙다. 이제 돌아가자."

주위의 악마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그리고 모두 사라지고 나카토만 남았다.

"가이아님....... 미샤라는 아이를 지켜주는 것이 정말 세계를 멸망시킬 어리석은 짓입니까. 아니면 감히 악마의 자격으로서, 한 인간을, 저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이자 최후의 방법입니까......."

말을 마치자 나카토도 사라졌다.

[예고] 천계의 경고 뒤로, 미샤가 아닌 고타로우의 주위를 천사들이 경계한다. 시로는 과연 고타로우를 지키기 위해 어떤 결단을? 엑? 시로 잠깐만!!!!
숨겨진 미라타이 가문의 능력. 인간으로서는 가질 수 없는 고위층 천사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능력을 대대로 물려받은 미라타이 가문의 힘이 이제 히로시의 몸에서 나타난다. 타로와 시아, 그리고 시로의 운명은?
다음 이야기. 친구를 지켜주는 방법.
일단 여기까지가 미리 써 둔 곳입니다. 길어서....... 아마 읽기 힘드실 거에요. 이제 기말고사 준비 때문에 자주는 못올리겠네요. 하여튼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미샤 팬 여러분....... 미샤를 다치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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