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두명의 왕비
팬드래건은 에스프리족의 정통을 자처하는 나라로, 전통적으로 혈통을 대단히 중시한다. 이를 위해 친족혼이나 타국가의 왕족과 혼약으로 혈통을 보존하고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팬드래건의 전통이다.
라시드1세가 이런 전통과 달리 평민 출신왕비인 로빈을 부인으로 맞이하는 데는 당연히, 강력한 귀족들의 반대를 무릎써야만 했었다.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혼한 로빈왕비는 셋째딸인 캘리를 낳은후 일찍 사망하게 되고, 국모를 비워둘 수 없다는 귀족들의 간청에 의해 라시드1세는 비프로스트 왕족 출신의 올리비아를 새 왕비로 맞아들이게 된다.
최고의 혈통을 가진 새 왕비는 곧 3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순산하게 되며 팬드래건귀족들의 비호하에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게 된다.
우드스톡황태자의 실종
투르족과의 오랜 전쟁에도 불구하고 라시드1세의 카리스마로 인해서 비교적 안정적인 왕권을 유지하던 팬드래건의 왕가에 불안의 그림자가 닥쳐온 것은 1239년, 계승서열 1위인 우드스톡 황태자가 투르족과의 전투, 즉 50년 전쟁에서 실종되는 사건이 있은 뒤 부터이다. 우드스톡황태자는 15년 뒤 투르족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클라우제비츠를 데리고 돌아올 때 까지 실종상태가 되게되고, 우드스톡황태자의 귀환을 기다리던 팬드래건 왕가는 결국 1250년, 우드스톡황태자의 동생 헨리를 정식 왕위계승자로 임명하게 된다.
그러나 정식왕위계승자가 아니었던 헨리의 왕위계승자 임명은 라시드1세이후 팬드래건의 왕권약화를 낳게되고, 결국 후에 일어날 장미전쟁의 씨앗이되게된다. (참고자료 : 팬드래건 왕가 계보)
성왕 라시드의 사망
1266년, 성왕 라시드 팬드래건 1세가 사망한다. 왕국을 재건하고 투르족의 침략을 막아내는등 수많은 공적으로 성왕이라는 칭호까지 받게된 그는 팬드래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중 한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의 사후 팬드래건의 역사는 장미전쟁 이라는 혼돈과 정쟁속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그것은 그가 남긴 두 부인의 가문간의 충돌이었다.두 가문사이의 충돌은 장미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콘웰지역의 영지를 물려받은 로빈의 자손들은 붉은장미를 가문의 상징으로 했고, 버몬트지역의 영지를 물려받은 올리비아의 자손들은 백장미를 상징으로 사용 했기 때문이다.
왕자의 난
라시드왕의 사망이후, 이미 로빈왕비의 혈통을 문제삼고 있었던 버몬트가는 라시드1세의 왕위를 계승한 헨리의 혈통에 대한 의문과 그의 굴욕적인 투르족과의 평화협정을 빌미삼아 반란을 일으키게된다.
올리비아의 장남 조지는 헨리에게 패해 참수당하지만, 둘째아들인 윌리엄은 잠시 비프로스트로 피신해 있다가 재공격을 가해 헨리를 베고 자신이 팬드래건의 왕위로 오르게된다. 이 사건 와중에 콘웰가의 혈통은 끊기고 살아남은 유일한 계승자인 리치몬드백작 클라우제비츠만이 게이시르 제국으로 망명해서 재기를 노리게된다.
패륜왕 리차드
윌리엄이 왕위에 오른 뒤 몇 년동안, 팬드래건왕국은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하였다. 투르족과의 오랜싸움은 휴전 협정으로 휴식기를 갖고 있었고 국내적으로도 권력투쟁이 표면화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윌리엄왕이 36세의 젊은 나이로 죽고, 12살의 어린아들이 왕위에 오르면서 팬드래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서게 된다. 윌리엄의 왕의 동생 리처드는 어린 필립왕의 섭정으로 국가를 통치하게 되고, 필립왕을 대관식도 하기 전에 일신상의 이유로 성에 감금해 버린다.
필립왕은 성에 감금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행방불명이 되고, 리처드는 왕의 행방불명을 명분삼아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게임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리처드왕의 폐륜적 행동을 입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뒤집기엔 리처드왕이 가진 세력이 너무나 강대했다.
성지의 왕녀들
윌리엄은 행방불명된 두 아들이외에도 두명의 딸을 두었었는데, 각각 17살의 엘리자베스와 16살의 메리였다. 이들은 윌리엄왕 사후에 벌어진 일련의 상황에 위기감을 느끼고 팬드래건왕성 북쪽의 성지로 피신하게 된다. 성지는 공권력이 미칠 수 없는 곳으로 범죄자라 할 지라도 성지 안으로 도망갈 경우 잡을 수 없고 성지안의 법률에 따라야하는 지역이다.
용자의 무덤
리처드를 피해 성지로 도망가기는 했지만, 자신의 두 동생과 자신의 가문의 복수를 위해 두 왕녀는 성지의 원장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렇지만 다른 귀족들은 리처드의 협박에 의해서 그녀들을 도와줄 수 없는 상황,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녀들은 자신들이 직접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을 부탁하게된다.
이런 그녀들에게 소개해 준 것은, 용자의 무덤. 팬드래건 서쪽, 커티스와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이곳은 과거로부터 최고의 무술수련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수많은 기사들이 수련을 받았던 곳이었다. 두 왕녀와 시녀는 원장의 안내로 용자의 무덤으로 가고, 그곳의 관리자인 샤른 호스트라는 사람으로부터 지도를 받게된다.
장미의 신부
한편, 리처드는 자신의 세력이 강대함에도 불구하고 왕으로서의 정통성이 부족하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이러는 때에 게이시르 제국으로 망명가 있던 콘웰가의 클라우제비츠로부터 리처드를 비난하는 성명서가 발표되고, 자신이 팬드래건의 왕이 된다면 윌리엄의 딸 엘리자베스와 결혼함으로서 장미전쟁을 종식시키겠다는 선언을 한다.
클라우제비츠의 선언에 리처드는 이 시도를 좌절시키고 또한 자신의 왕위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왕녀 엘리자베스와 결혼할 마음을 먹게된다. 버몬트가의 리처드와 콘웰가 의 클라우제비츠로부터 동시의 결혼의 대상이되게된 엘리자베스는 이 장미전쟁을 종식시킬 열쇠로 여겨지게 되고 장미의 신부로 불리게된다. 세인의 관심은 과연 이 장미전쟁의 최종승자인 장미의 신부를 차지하게 되는 가문이 어디가 될 것인가에 집중되게된다.
팬드래건은 에스프리족의 정통을 자처하는 나라로, 전통적으로 혈통을 대단히 중시한다. 이를 위해 친족혼이나 타국가의 왕족과 혼약으로 혈통을 보존하고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팬드래건의 전통이다.
라시드1세가 이런 전통과 달리 평민 출신왕비인 로빈을 부인으로 맞이하는 데는 당연히, 강력한 귀족들의 반대를 무릎써야만 했었다.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혼한 로빈왕비는 셋째딸인 캘리를 낳은후 일찍 사망하게 되고, 국모를 비워둘 수 없다는 귀족들의 간청에 의해 라시드1세는 비프로스트 왕족 출신의 올리비아를 새 왕비로 맞아들이게 된다.
최고의 혈통을 가진 새 왕비는 곧 3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순산하게 되며 팬드래건귀족들의 비호하에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게 된다.
우드스톡황태자의 실종
투르족과의 오랜 전쟁에도 불구하고 라시드1세의 카리스마로 인해서 비교적 안정적인 왕권을 유지하던 팬드래건의 왕가에 불안의 그림자가 닥쳐온 것은 1239년, 계승서열 1위인 우드스톡 황태자가 투르족과의 전투, 즉 50년 전쟁에서 실종되는 사건이 있은 뒤 부터이다. 우드스톡황태자는 15년 뒤 투르족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클라우제비츠를 데리고 돌아올 때 까지 실종상태가 되게되고, 우드스톡황태자의 귀환을 기다리던 팬드래건 왕가는 결국 1250년, 우드스톡황태자의 동생 헨리를 정식 왕위계승자로 임명하게 된다.
그러나 정식왕위계승자가 아니었던 헨리의 왕위계승자 임명은 라시드1세이후 팬드래건의 왕권약화를 낳게되고, 결국 후에 일어날 장미전쟁의 씨앗이되게된다. (참고자료 : 팬드래건 왕가 계보)
성왕 라시드의 사망
1266년, 성왕 라시드 팬드래건 1세가 사망한다. 왕국을 재건하고 투르족의 침략을 막아내는등 수많은 공적으로 성왕이라는 칭호까지 받게된 그는 팬드래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중 한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의 사후 팬드래건의 역사는 장미전쟁 이라는 혼돈과 정쟁속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그것은 그가 남긴 두 부인의 가문간의 충돌이었다.두 가문사이의 충돌은 장미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콘웰지역의 영지를 물려받은 로빈의 자손들은 붉은장미를 가문의 상징으로 했고, 버몬트지역의 영지를 물려받은 올리비아의 자손들은 백장미를 상징으로 사용 했기 때문이다.
왕자의 난
라시드왕의 사망이후, 이미 로빈왕비의 혈통을 문제삼고 있었던 버몬트가는 라시드1세의 왕위를 계승한 헨리의 혈통에 대한 의문과 그의 굴욕적인 투르족과의 평화협정을 빌미삼아 반란을 일으키게된다.
올리비아의 장남 조지는 헨리에게 패해 참수당하지만, 둘째아들인 윌리엄은 잠시 비프로스트로 피신해 있다가 재공격을 가해 헨리를 베고 자신이 팬드래건의 왕위로 오르게된다. 이 사건 와중에 콘웰가의 혈통은 끊기고 살아남은 유일한 계승자인 리치몬드백작 클라우제비츠만이 게이시르 제국으로 망명해서 재기를 노리게된다.
패륜왕 리차드
윌리엄이 왕위에 오른 뒤 몇 년동안, 팬드래건왕국은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하였다. 투르족과의 오랜싸움은 휴전 협정으로 휴식기를 갖고 있었고 국내적으로도 권력투쟁이 표면화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윌리엄왕이 36세의 젊은 나이로 죽고, 12살의 어린아들이 왕위에 오르면서 팬드래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서게 된다. 윌리엄의 왕의 동생 리처드는 어린 필립왕의 섭정으로 국가를 통치하게 되고, 필립왕을 대관식도 하기 전에 일신상의 이유로 성에 감금해 버린다.
필립왕은 성에 감금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행방불명이 되고, 리처드는 왕의 행방불명을 명분삼아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게임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리처드왕의 폐륜적 행동을 입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뒤집기엔 리처드왕이 가진 세력이 너무나 강대했다.
성지의 왕녀들
윌리엄은 행방불명된 두 아들이외에도 두명의 딸을 두었었는데, 각각 17살의 엘리자베스와 16살의 메리였다. 이들은 윌리엄왕 사후에 벌어진 일련의 상황에 위기감을 느끼고 팬드래건왕성 북쪽의 성지로 피신하게 된다. 성지는 공권력이 미칠 수 없는 곳으로 범죄자라 할 지라도 성지 안으로 도망갈 경우 잡을 수 없고 성지안의 법률에 따라야하는 지역이다.
용자의 무덤
리처드를 피해 성지로 도망가기는 했지만, 자신의 두 동생과 자신의 가문의 복수를 위해 두 왕녀는 성지의 원장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렇지만 다른 귀족들은 리처드의 협박에 의해서 그녀들을 도와줄 수 없는 상황,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녀들은 자신들이 직접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을 부탁하게된다.
이런 그녀들에게 소개해 준 것은, 용자의 무덤. 팬드래건 서쪽, 커티스와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이곳은 과거로부터 최고의 무술수련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수많은 기사들이 수련을 받았던 곳이었다. 두 왕녀와 시녀는 원장의 안내로 용자의 무덤으로 가고, 그곳의 관리자인 샤른 호스트라는 사람으로부터 지도를 받게된다.
장미의 신부
한편, 리처드는 자신의 세력이 강대함에도 불구하고 왕으로서의 정통성이 부족하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이러는 때에 게이시르 제국으로 망명가 있던 콘웰가의 클라우제비츠로부터 리처드를 비난하는 성명서가 발표되고, 자신이 팬드래건의 왕이 된다면 윌리엄의 딸 엘리자베스와 결혼함으로서 장미전쟁을 종식시키겠다는 선언을 한다.
클라우제비츠의 선언에 리처드는 이 시도를 좌절시키고 또한 자신의 왕위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왕녀 엘리자베스와 결혼할 마음을 먹게된다. 버몬트가의 리처드와 콘웰가 의 클라우제비츠로부터 동시의 결혼의 대상이되게된 엘리자베스는 이 장미전쟁을 종식시킬 열쇠로 여겨지게 되고 장미의 신부로 불리게된다. 세인의 관심은 과연 이 장미전쟁의 최종승자인 장미의 신부를 차지하게 되는 가문이 어디가 될 것인가에 집중되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