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학교 가야지!"
시마가 큰 소리로 고타로우를 불렀다. 고타로우는 어기적 어기적 침대에서 기어나왔다.
"으아아악!"
땅을 딛는 순간 발바닥에 엄청난 통증이 몰려오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어제 유리조각에 심하게 찔렸던 발이 아직도 낫지 않은 것이다.
내가 왜 그 때 유리조각을 그냥 밟았지? 내가 미쳤나봐...
혼자 궁시렁거려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때 고타로우는 정말로 미쳤음에 분명하다. 어떻게 그 유리조각을 그냥 밟을 생각을 했을까?
작가도 미쳤음에 분명하다.
고타로우는 다치지 않은 한쪽 발로 깡총깡총 뛰어서 시노에게로 다가갔다. 시노의 표정이 야리꾸리해졌다.
"어제 유리 밟더니만... 참 잘됐다."
비냐앙 거리는 듯한 말투였지만 시노의 표정에는 하나밖에 없는 오빠를 걱정해주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런 시노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고타로우는 미소로 답했다.
"응.. 난 괜찮아."
"그으래애?"
오히려 다시 웃어주는 고타로우가 이상하다는 듯 시노는 더욱 비냐앙거리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지만 고타로우는 이미 밥먹으러 방에 들어가버린 상태였다.
시노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가방에 책을 집어넣었다.
"휴우.. 오빠도 참."
고타로우와 시노는 집을 나섰다. 엄마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고타로우를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이 지극히도 슬퍼보여서 고타로우는 웬지 마음한쪽이 불편했다.
"오빠 왜 안와?"
갑자기 시노가 물었다.
"으..응?"
고타로우는 그자리에 가만히 서서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고 있었다는것을 고타로우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빨리 와. 늦겠다."
시노가 말했다. 고타로우는 알았다고 하며 시노쪽으로 뛰어갔다.
"저기 오빠"
학교에 거의 다다랐을때 시노가 말을 걸었다.
"음 뭐?"
고타로우가 되물었다. 시노는 잠시 말 꺼내기를 주저했다. 뭔가 심각한 말을 하려는 듯이. 이제 막 10살을 넘긴 어린 소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단호해 보였다.
"아직도.. 학교에서 왕따야?"
"음?"
갑작스런 시노의 물음에 고타로우는 놀랐다.
"그게 그렇게 걱정되니?"
나지막히 고타로우가 물었다. 시노의 표정은 배웅하던 엄마만큼이나 슬퍼보였다.
"오빠인데 걱정되지 않겠어? 그것도 미쳤단 소릴 듣는데... 오빠라면 내가 미쳤다는 소리 듣고있으면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아?"
벌써 저 애가 저렇게 컸구나. 고타로우는 시노에게 미안했다. 고타로우는 시노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리고 시노를 다정하게 꼬옥 끌어안아 주었다.
"괜찮아. 오빠는 괜찮으니까... 시노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오빠가 많이 컸네."
시노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고통이란 사람을 성장시키는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시노가 고통받은만큼 어른스러워진 것 처럼 고타로우역시 고통받은만큼 자랐다. 이 고통은 시노와 고타로우를 좌절로 이끌기는 커녕 오히러 더욱 강하게 자라게 했다.
고타로우는 생긋 웃어주며 시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갑자기 시노가 외쳤다.
"맞다! 이러다가 늦겠다!"
그리고 시노는 저만치 뛰어가 버렸다. 어, 같이가! 하고 소리지르며 고타로우도 시노를 따라갔다.
학교 교문에 들어서자 시노는 친구와 함께 갔다. 고타로우는 시노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고타로우는.. 친구가 없었다. 친구가 없는것은 고타로우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이상한 능력 때문이었다. 그 능력은 거의 고타로우의 인생을 망치다시피 했다.
"어이. 히구치!"
누군가 뒤에서 고타로우를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별로 반갑지 않은 얼굴이 서 있었다.
"어. 유바리"
고타로우의 뒤에는 '유바리 쿠소'라고 하는 고타로우의 반 학생이 있었다. 덩치가 무척 컸고, 머리가 안돌아갔다 .그리고 고타로우를 굉장히 못살게 굴었다.
"어? 히구치가 아는척도 하네?"
유바리가 빈정거렸다. 고타로우는 대답을 하지 않고 바로 뒤 돌아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유바리는 고타로우의 어깨를 강하게 눌렀다.
"어디 가냐? 내가 말걸었는데 무시해?"
고타로우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유바리의 손에서 어깨를 빼냈다.
"지각하겠다."
고타로우의 말에 유바리는 이것봐라, 하는 표정을 지었고 고타로우를 묵묵히 따라갔다.
유바리와 고타로우는 교실로 들어섰다. 아이들은 유바리와 고타로우가 함께 오자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바리에게 한 재수없게 생긴 놈이 말을 걸었다.
"야 쿠소! 웬일이냐? 히구치랑 같이 오고?"
유바리는 킬킬거리며 그놈과 음흉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그 재수없게 생긴 놈은 '오스이 게스이' 라고 무슨 부모의 작명술이 저런지 참 웃기 이름을 가진 놈이었다.
고타로우는 책상에 엎드렸다. 그리고 시노의 말을 떠올렸다.
'아직도... 학교에서 왕따야?'
그렇다. 왕따였다. 저런 깡패놈들한테 괴롭힘이나 받고, 고타로우의 짝조차 고타로우를 외면하며 싫어해서 고타로우는 혼자앉았다. 고타로우의 빈 옆자리의 주인공은 죽었다. 그것도 고타로우가 그 아이의 죽음을 미리 예언했기 때문에, 그 아이가 앉았던 책상은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가끔 고타로우가 손으로 쓸어주고 만져주고 할 뿐.
교실은 아주 시끄러웠다.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시끄럽게 떠들던 여자아이들과 마구 뛰어다니는 남자아이들. 그러나 종이 치면 이 소리들은 모두 잠잠해지기 마련이었다.
"자! 조용히 해라!"
선생님이 소리쳤다.
고타로우의 담임선생님은 하나모 카이토 라고 하는 30대의 선생님이였다. 하나모 선생님은 이 반에서 고타로우를 싫어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고타로우는 그 선생님을 좋아했다.
"여러분, 조용히 해요. 오늘은 새로운 학생이 전학을 왔어요. 도시에서 왔기 때문에 모두들 잘 지낼거라고 믿어요."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는 바깥에 있는 전학생을 불렀다.
"유카리, 들어와라."
갑자기 교실의 분위기가 훈훈해졌다. 교탁 앞에는 길다란 검은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아주 예쁘게 생긴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아무리 교실을 둘러봐도 이 새 학생만큼 예쁜 아이가 없을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도쿄에서 전학 온 아키모토 유카리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맑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소녀가 말했다. 고타로우는 그 소녀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아키모토 유카리. 괜찮은 이름이네.
"아직 이곳은 익숙하지 않으니까 잘 부탁 드려요."
아키모토 유카리란 소녀가 자기소개를 마쳤다. 그러자 하나모 선생님이 유카리에게 말했다.
"유카리, 지금 자리가 하나밖에 없으니까 저기 끝에 앉아있는 히구치 옆에 앉거라."
고타로우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짝꿍?
"네."
유카리는 고분고분하게 말하고는 고타로우의 옆으로 걸어갔다. 아이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고타로우에게 집중되었다.
이 아이도 곧 날 싫어하게 되겠지?
교실은 조용했다. 하나모 선생님은 조용히 자습을 시켰지만 아이들은 잡담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히구치란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아마도 또 고타로우의 욕을 하고 있을것이다.
고타로우는 기분 더럽다는 표정으로 다른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유카리는 고타로우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히구치라고 했지? 이름이 뭐야?"
"고타로우."
대충 대답했다. 그러나 유카리는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방금 들었겠지만, 아키모토 유카리라고 해. 만나서 반갑다."
이 아이 참 이상했다. 아니,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고타로우에게만 이상하게 느껴졌을 뿐. 지금까지 이런식으로 말을 걸어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것이다.
"그래..."
고타로우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유카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너 혹시 내가 싫어?"
"응?"
고타로우가 고개를 들었다.
"아니?"
싫다고 한 적 없는데.
"그런데 왜 그래?"
유카리가 물었다.
고타로우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유카리는 모르겠다 하는 표정으로 고타로우를 바라보았다. 고타로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너 나중에 날 싫어하게 될거야."
간신히 고타로우가 입을 열어 말했다. 유카리는 더욱 더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타로우를 보았다.
"이따가 애들 만나봐."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종이 쳤다. 아이들은 역시나 유카리에게 우르르 몰려들었다.
"넌 저리 가."
한 손이 고타로우를 밀쳐냈다. 고타로우는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유카리의 눈이 크고 동그랗게 변했다.
"어머, 얘. 그러지 마."
아이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유카리는 고타로우에게 다가가 손을 뻗어주었고, 고타로우는 고개를 젓고 스스로 일어났다. 아이들은 고타로우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야. 히구치. 성의를 무시하면 되는거냐?"
오스이가 비냐앙 거렸다. 고타로우는 오스이를, 아이들을, 놀란 표정의 유카리를 쳐다보지 않은 채 바깥으로 나갔다.
하루종일 유카리를 무시했다. 유카리가 다정하게 물어오는 말도, 미소도 모두 무시해버렸다. 유카리는 본쿠라라는 아이와 함께 놀기 시작했다. 왜 하필 본쿠라인지, 왜 그런애가 좋은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유카리는 고타로우에게 말을 걸어보려고 애를 썼지만 그때마다 본쿠라는 유카리를 낚아챘다.
유카리는 전학오자마자 모든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유카리는 예쁜 외모에 성격이 아주 착했고 모범생으로 예의바르고 얌전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드디어 유카리는 고타로우를 붙잡는데 성공했다.
"고-타-로-우!"
뒤를 돌아보니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유카리가 서 있었다. 고타로우는 유카리를 한 번 돌아봤고, 이번엔 온몸을 돌렸다. 유카리는 고타로우 앞으로 뛰어왔다.
"헉..헉.. 고타로우! 너 찾느라고 애썼어."
유카리가 헐떡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반 아이들을 모두 반하게 만들어버린 그 미소를 지었다.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왜 날 무시한거야?"
고타로우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울컥 하고 치밀었다. 감동이라고 해야 할까? 고타로우는 입을 열었다.
"너 나 안 싫어해?"
유카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왜?"
고타로우가 더 놀랐다.
"애들이, 본쿠라가 아무말도 안했어?"
유카리는 픽 웃었다.
"네가 이상하다는거? 정신병자 같다는거?"
그리고 유카리는 단숨에 내뱉었다.
"네가 정신병자 같더라도 상관 없어. 거짓말일지도 모르고 말야... 그리고 본쿠라, 본쿠라도 너에 대해서 뭐라고 하더라고. 너랑 놀지 말라고. 하지만 너랑 놀지 말라고 해도 어쩔거니? 난 네가 좋아질 것 같아. 게다가 짝이니까 친해지는건 쉬운 일이잖아. 그렇지? 이제 앞으로 내 말 무시하면 안돼."
고타로우는 멍해졌다. 이 아이가 나보고 좋아질 것 같다고 했다. 친구가 생길 수 도 있다고 했다.
믿을 수 없었다.
"왜 그래?"
고타로우가 아무말 하지 못하고 있자 유카리가 물었다. 고타로우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아... 아냐. 음음. 그래."
유카리가 생긋 웃었다.
"그럼 집에 가야지. 어디 살아?"
고타로우는 손가락으로 저 너머를 가리켰다.
"저어기"
"우리 집하고 방향 비슷하네?"
유카리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럼 집에 갈 때 같이 가자.. 알았지?"
"응.. 그래."
고타로우는 뻘쭘하게 말했고 유카리와 함께 나란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유카리의 집이 더 가까웠다. 유카리는 집 앞에 서더니 고타로우에게 말했다.
"아 그리고, 내 동생도 이 학교에 입학했어. 4학년이야."
4학년? 시노랑 같았다.
"이름은 사유리야. 앞으로 잘 부탁해."
그리고 유카리는 손을 흔들며 집으로 뛰어갔다. 혼자 남은 고타로우는 집까지 걸어갔다.
사유리, 사유리라.
그나저나 친구가 생길거라는 예감은 고타로우를 기분좋게 했다.
아키모토 유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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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만의 소설..-_-
쿠소= 똥 유바리= 오줌 오스이 게스이= 생각 안나는데 시궁창이란 뜻이었..
더러워서 죄송합니다..;=_=
유카리= 인연 사유리= 작은 백합
아키모토란 성과 선생님 이름은 일본이름 만들기 돌렸습니다-_-
하지만 아키모토란 성이 비중이 있을것이에요
그리고 유카리만큼, 사유리란 인물이 비중이 있을듯...
라는것이 있었다니....
새 캐릭터가 많이 나오는군요...
고타로우가 과연 진정한 친구를 사귈수있을지....다음편이 빨리 나왔으면 합니다...
P.S. 이제.. 나도 소설을 시작할 때가 되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