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01 22:34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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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1879~1955 >>>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 학교 성적을 별로 좋지 않았으나 수학에는 매우 뛰어났다. 1905년 베
른 특허국 기사로 있으면서 특수 상대성 원리와 브라운 운동, 빛의 운동 연구 논문 발표로
유명해졌다. 이 후로 본격적인 물리학 연구에 전념하여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으며,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되었다. 유대 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독일 나치스에 쫓겨 미국으로 망
명하였으며, 세계 평화 운동에 참여하였다.

수학 성적 때문에...

1895년 이른 가을, 알베르트는 취히리에 가서 대학 입학 시험으로 치렀다. 그러나 합격자 발표날, 불행히도 합격자 명단에는 그의 이름이 빠져있었다.
'아! 떨어졌구나.'
이렇게 생각한 알베르트는 크게 실망하고 교문쪽으로 터덜터덜 걸어나갔다.
"아, 이것봐요. 혹시 알베르트 학생아닌가요?"
교문을 막 나가서려 하는데 그를 불러 세우는 사람이 있었다. 뒤돌아 보니 그 학교의 직원인 듯한 사람이 서 있었다.
"예, 맞습니다만......"
"마침 잘 만났군. 학장님께서 부르시니 어서 가보게."
알베르트는 영문을 몰라하며 학장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인자스럽게 보이는 학장이 그를 맞아 주었다.
" 자네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가? 수학 담당 교수가 자네 시험답안지를 보고 몹시 놀랐다고 하더군. 그래서 말이네만, 다른 과목 성적과목은 나쁘지만 수학성적이 너무 우수해서 불합격시키기가 너무 아깝네. 어떤가, 1년 동안 김나지움에서 더 공부하고 오면 내년에는 자네를 무시험으로 받아주고 싶은데...."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알베르트는 눈을 빛내며 힘있게 대답하였다. 김나지움의 갑갑하고 틀에 박힌 생활이 싫어 중퇴하고 만 그였으나 이런 조건이라면 얼마든지 참고 견딜수 있을 것 같았다.
고등 학교를 중퇴하고 대학 입시에도 떨어진 알베르트였지만 그 뛰어난 수학적 재능 때문에 대학 공부를 할수있게 되었던 것이다.



과학은 평화의 도구이어야...

"우리 과학자들은 이제 무엇을 할것입니까? 과학은 정치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진리와 평화를 위해 쓰여져야 할 과학이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그냥 앉아서 보고만 있어서 되겠습니까?"

아인슈타인의 피끓는 호소는 전세계의 과학자들을 궐기하게 하였다.
나치스의 원자 폭탄 연구 소식을 듣고 루스벨트 대통령을 설득하여 미국에서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어 내도록 한 아인슈타인.
그 무서운 원자 폭탄을 만들 수 있는 특수 상대성 원리를 생각해 낸 아신슈타인이었지만, 그는 강대국끼리 무기 경쟁을 하여 인류를 파멸의 위험에 몰아 넣으라고 이론적인 뒷받침을 해 준 것은 아니었다.
미국이 제 2차 세계대전을 끝맺기 위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덜어뜨려, 그 무서운 위력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통방게 되었을때, 아인슈타인은 그들의 고통에 못지않게 견딜 수 없는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 날은 내게 있어어도 매우 슬픈 날이었다. 내게도 책임이 있다."
그 후 아인슈타인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여 과학자의 빛나는 양심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1. 생애


아인슈타인은 이론물리학자로 남독일의 Ulm에서 Herman Einstein과 그의 첫 부인이었던 Koch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들은 모두 즐거운 성격의 소유자였고 아버지는 사업을 꾸려가는 재미없는 활동보다는 가족을 데리고 야외로 피크닉 나가는 것을 더 즐기는 쾌활한 사람이었다. Albert가 가장 가깝게 흉금을 털어 놓았던 사람은 그의 여동생 Maja였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부모와 두 아내가 죽었을 때보다 더 슬퍼했었다.

Newton처럼 Albert 역시 조숙한 어린아이는 아니었고 말을 늦게 배워으며 10살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독일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부모는 그런 그를 지진아가 아닐까 하는 걱정도 했었다. 그리고 다섯 살에서 열 살까지 다녔던 천주교 학교에서도 공부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선생님들은 Albert의 능력과 장래성에 대하여 부정적이었다. 1889년에는 전형적인 독일식 학교 Luitpold Gymnasium으로 학교를 옮겼는데 그곳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계속적인 복종심을 갖게 하는 것을 교과목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 엄격하고 위압적인환경이 Albert에게는 권위에 대한 특히, 교육적 권위에 대해서 증오심을 심어준 것이다. 그는 열두살 때 학교에서 배우기도 전에 수학 교과서의 기하를 스스로 깨우쳤는데 그것의 규칙성과 정리에서의 논리가 그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인상을 남겼고 후에 그가 능력을 펼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1894년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자 그의 부모와 여동생은 밀라노로 이사를 했고, 그 역시 그곳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그는 대학에 진학하려 하였는데 고등학교 졸업증명서가 없었기 때문에 어떤 대학에도 입학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Zurich 공과대학이 다행이도 입학을 위한 졸업증명서가 필요치 않음을 알게되었고 그는 거기에 응시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가 실패한 것은 과학과 기초수학에 대한 실력부족이라기 보다는 준비하는 방법이 적절하지 못한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Aarau Gymnasium의 대학에 입학하여서는 생물학이나 어학과 같은 자신없는 과목도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는 학교에 다니는 것을 무척 즐거워 했었고 거기서는 평범한 생활을 하였다. 그런 생활속에서 그는 종교와 정치 그리고 수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로 친구들과 오랜시간 토론을 하기도 했는데 수업에 출석하는 것만은 자신의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고 수업시간을 달가워 하지 않는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1900년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그곳에 조교자리를 얻으려다 실패했지만 스위스 연방관측소 소장인 Alfred Wolfer의 도움으로 취리히에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 해 12월에 그는 「물리연감(Annalen der Physik)」에 첫 번째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 논문은 화학자 Wilhelm Ostwald의 선구적 연구에 자극을 받은 것이었다. 1902년에 드디어 스위스 특허국에 하급 특허검사관으로 취직하여 안정된 직장을 구했고 그 다음 3년 동안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공간과 시간의 관계에 대한 혁명적인 생각을 구상하였다. 그리고 1903년에 그의 동창생 Mileva Maric와 결혼하였다.

세 편의 그의 논문은 학문적 자격도 갖추지 못하고 박사학위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물리연감(Annalen der Physik)」에 보냈기 때문에 논문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이 있었는데 다행히 논문의 혁명적 특성만은 인정되었었다. 세 편의 논문 중 첫 편은 흑체복사뿐 아니라 복사 전반에 대한 현상을 설명한 것으로 특히 광전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자유광자 즉 빛의 입자론을 부활시켰다. 광전효과에 대한 그의 생각은 1912년에서 1915년사이에 Millikan의 실험에 의해서 사실로 밝혀졌다. 두 번째 논문은 브라운 운동에 대한 수학적 이론으로 이것은 1909년 장페린의 멋있는 실험에 의해 증명되었다. 세 번째 논문은 상대론에 대해 처음 발표된 논문으로 원자물리학에서 가장 유용하게 이용되었고 오늘날 특수 상대성 이론이라고 불리는 영역의 한 분야를 다루었다.

아인슈타인은 물체가 빛의 속력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무한히 많은 에너지가 그 물체로 옮겨져야 하는데 우주에 존재하는 사용가능한 에너지의 양은 유한하므로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또한 보였다. 1909년 Zurich 대학교의 물리학 부교수자리를 수락하였고 1910년에는 Prague로 2년 동안만 옮기겠다고 결정했는데 그것에 대한 조건은 더 많은 봉급과 정교수자리에 대한 약속이었다. Prague에서 아니슈타인은 질량과 에너지에 의한 시공간의 곡률에 대한 생각을 구상하기 시작하였고 1912년 독일 대학교를 떠나 Zurich로 돌아왔지만 스위스에서는 1년 동안만 머무르고 의 Kaiser Wilhelm 연구소의 소장직을 수락하였다. 연구소 소장직을 수락하게 된 것은 당시의 저명한 물리학자들 중의 두 사람이었던 Walter Nernst와 Planck가 베를린에서 함께 일하자는 요청에 흔들린 것도 있겠고 다른 것은 강의나 실험시간 등의 임무없이 오로지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베를린 대하교의 명예교수직을 제공 받았기 때문이었다.

아인슈타인의 결혼생활은 상당기간 동안 곤경에 처해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일을 가족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결국 결혼생활은 종말을 가져왔다. 거기에 대해 그는 크게 슬퍼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가 일반상대론의 수학적 잘못은 고치느라 힘든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크게 슬픔을 느끼지 않은 것 같다.

1916년에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General Theory of Relativity)을 설명한 논문이 「물리연감(Annalen der Physik)」에 실렸는데 그는 그 논문에 공간이 우주의 사건들이 전개되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고 공간자체가 그것이 포함하고 있는 에너지와 물체 들의 질량에 의해 영향을 받는 기초적인 구조를 가짐을 보였다. 1917년에는 빛의 유도방출과 우주의 구조에 관한 두 개의 중요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후에는 정신쇠약증세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았다. 이 두 논문중에서 첫 번째 것은 레이저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였고 두 번째 것은 현대 우주론의 주체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건강은 1919년에 결혼한 아내 Elsa에 의해 서서히 회복이 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이 검증됨에 따라 시간과 공간의 재구성이 완성되었고 상대론과 이를 만든 사람에 대한 기사와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세사의 관심이 쏠리자 강연과 글을 부탁하는 요청이 수없이 쇄도하였고 그는 그의 연구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았으므로 대부분을 거절하였다.

1921년 그는 "수리물리학과 특별히 광전효과에 대한 법칙을 발견한 공로(Contributions to mathematical physics and especially for his discovery of the law of photoelectric effect)"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고 1930년대 초에 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두해 겨울동안 방문교수로 일했다. 그리고 1933년 말에 Princeton 대학으로 간후 가끔 미국 국내를 여행한 것을 제외하고는 1955년 사망할 때까지 Priceton에 남아 있었다.

1879.3.14 독일의 Ulm에서 출생

1886-1900 Zurich Politechnic Institute에서 공부

1901년 스위스 국적 획득

1902년 스위스 특허청에서 일자리를 구함

1903년 학생시절 친구 Mileve Maric와 결혼

1905년 광전효과에 관한 논문을 Annalen der Physik에 발표


브라운 운동에 관한 논문을 발표
특수상대론 논문
"On thw Electrodynamics of Moving Bodies" 발표

1908-1914 Berne, Zurich, Prgue 등의 대학에서 강의

1914-1933 Kaiser Wilhelm Institute의 물리학 교수 및 이론물리 책임자 1916년 일반상대론에 관한 연구 완성


레이저의 기초가 된 방사광의 흡수와 방사에 대해 연구

1918년 통일장 이론에 관한 연구를 시작해서 평생을 계속함

1919년 사촌 Elsa와 결혼

1921년 미국 처음 방문,광전 효과에 관한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

1924년 Bose의 연구를 이어받음

1925년 이스라엘의 Hebrew University의 운영위원이 됨

1930년 우주팽창에 관한 모델을 제시

1933년 나치를 피해 망명, 프린스톤의 Institute for Advanced Study에 감

1939년 원자력 에너지의 가능성에 대해 Roosevelt에게 편지

1940년 미국 시민권 획득

1952년 이스라엘의 대통령이 되달라는 요청을 거절

1955.4.18 Princeton에서 사망

BC 323 Macedonia가 그리워 Euboea 섬으로 감

BC 322 Euboea의 수도 Chalcia에서 사망

2. 과학적 업적

과학의 역사에서 상대성이론이 선포된 것과 같이 한 사건이 인간의 사고에 심오한 영향을 미친 적은 없었다. 상대성 이론은 보통 상대론이라고도 하는데 상대성 원리(General theory of relativity)에 따라 구성되는 이론이다. 보통 뉴튼역학(Newton Mechanics)을 제외하고 특수상대성이론(Special theory of relativity), 통일장이론(Unified field theory)등을 말하고 단순히 상대성 이론이라 할 때는 특수상대성이론을 말한다. 뉴튼의 운동법칙은 갈릴레이(Galilei) 변환에 대해서 불변이지만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관성 계에 있어서 모든 자연법칙이 로렌쯔변환에 대해 불변인 것을 요구한다. 또 일반상대성 이론에서는 관성계란 제한을 제외하고 모든 좌표계로 물리법칙이 같은 형으로 표시되도록 했었다. 이와 같이 상대성 원리는 어떤 좌표계도 다른 계와 비교하여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고 법칙이 좌표계의 변환에 대해서 불변의 형태를 취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수상대성이론(Special theory of relativity)
로렌쯔 변환에 대한 불변성을 요구하는 상대성이론으로 1905년 아인슈타인이 서로 등속운동을 하는 관성 계에 대한 상대성원리와 광속도 불변의 원리를 기초로 하여 구성한 체계이다. 이 이론을 기초로 하는 이론은 상대론적 역학, 전자기장 텐서로 나타낸 전자기의 기본법칙 등 이외도 양자학에서 디락(Dirac)의 전자론에서 시작되어 장의 양자론이 전개되고 소립자론의 유력한 지도원리로 되어있다.

일반상대성 이론(General theory of relativity)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론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지 근 10년이 지난 후에 1916년에 일반상대론에 고나한 논문이 베를린 학술원의 논문집에 실렸었다. 그것은 비교적 짧은 논문이었지만 20세기에 있어 가장 위대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10년에 걸쳐 이룩한 강렬하고 통찰력 있는 사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은 임의의 좌표계에 대해서 역학법칙의 상대성원리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하는 상대론이다. 이것은 1916년 아인슈타인의 등가원리를 출발점으로 하여 만유인력을 겉보기의 힘과 동등한 것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시공세계를 라이만 공간으로 가설하고 그 기본 텐서 gμν에 의하여 만유인력은 임의적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해했다. 공간좌표를 x1x2x3으로 하고 시간좌표를 x4로 하면, 세계선의 선소 ds는 ds²=gμνdx x 로 표시된다.

만유인력 이외의 힘에 작용되지 않는 질 점의 세계선은 측지선 δ∫ds=0으로 주어지고, 또 빛의 경로는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측지선이 된다.

gμν와 물질 및 에너지의 분포와의 관계는

-8π Tμν=Gμν -Ggμν / 2+λgμν

┌ Tμν: 에너지 운동량 텐서
│ Gμν,G : 라이만 공간 곡율 텐서
│ Rμν,R : 스칼라 곡률
└ λ : 매우 작은 상수, 우주상수

라고 하는 만유인력의 방정식으로 주어진다. 일반상대성이론을 전자기장까지 확장하려는 것이 통일장이론이다.

Einstein - de Broglie's Formula
E=hν P=h/λ

┌ E : 빛과 전자 등의 에너지
│ P : 운동량
│ ν : 진동수
│ λ : 파장
└ h : 플랑크 상수

아인슈타인의 비열식 ( Einstein's formula for specific heat)
고체의 정적 몰 비열이 저온에서 0에 근접하고 듈롱-프티의 법칙에 의한 값 3R(R은 기체상수)에서 벗어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1907년 아인슈타인이 제출한 비열식

아인슈타인의 우주 ( Einstein's Universe )
일반상대성이론의 만유인력장 방정식을 물질 및 방사의 분포가 같다고 가정하고 모든 점의 둘레에 구대칭의 성질을 갖는 것으로 하고 풀이하면 그 정적인 해의 하나로서

ds²= -(dr²/ 1-r²/ R²) - r²sin²θ dφ²+C²dt²

가 얻어진다. 이것은 1917년에 아인슈타인이 유도한 것으로 이 선소를 갖는다고 생각되는 우주의 모형을 아인슈타인 우주라 한다.

3. 후대에 미친 영향

Darwin의 진화론과 Planck의 양자론은 우리의 우주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은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사고의 모든 측면에 대해 영향을 주었으므로 과학의 가장 중요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일반 상대론은 뉴턴의 중력이론으로는 가능하지 않거나 가능하더라도 단지 부분적으로밖에는 취급할 수 없는 과제인 우주론에 가장 극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그의 중력이론을 전 우주에 적용하여 우주에 대한 정적모형(팽창하지도 무너지지도 않는 모형)을 추론했는데 아인슈타인을 뒤이은 다른 우주론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의해 팽창이론도 포함하는 정적이지 않은 우주모형들에 이를 수 있음을 보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일반상대론은 관측과 이론연구가 열광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우주론이 더욱 번창하게 하는데 대단히 많은 기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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